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의는 부시와 옐친을 포함한 50명의 정상이 한날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화려한 국제회의임에 틀림없다. 참가국 52객,참가대표 7천여명,취재기자 2천5백여명 등 양적인 규모는 그 어떤 국제회의에 못지않다.하지만 유럽 언론들이 이 회의를 다루는 비중은 리우환경 회의나 바로 전에 끝난 G7정상회의,지난해 12월의 EC마스크리히트 정상회의 등에 미치지 못한다. 급박한 현안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CSCE의 장래라는 다소 느슨한 주제를 논의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를 다루는데 더 열을 올리는 것은 오히려 일본이다. 회원국도 아닌 일본은 취재기자만도 1백여명이나 몰려와 도대체 누구집 잔치인지 어리둥절하다. 물론 이를 꼭 탓할 일은 아니다. 세계 구석구석에 일제상품을 수출하는 경제력과 국제화한 국민의식에 언론의 수준까지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왜 일본언론이 남의 행사에 회원국들보다 더 관심을 보내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물론 CSCE의 회원국이 아니다. 다만 특별 초청 대상으로 선정돼 마쓰나가 노부오 외무장관 대리를 대표로 파견했다. 특별초청 대상국으로서 일본은 자신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
하지만 특별초청 대상으로 선정된 일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유엔 나토 OECD 등 10개 특별초청 대상중 국가로선 유일하니 그럴만도 하다. 이런 일본의 심정은 자부심 차원에 그치는게 아닌것 같다. 현지에서는 기침을 하면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대국이 됐으면서도 정치적 위상은 그에 못따르는 현실에 조바심해왔던 일본이 이번 일을 정치대국화의 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엔평화유지 법안의 날치기 처리까지 강행하면서 정치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마당에 내용과 형식이야 어찌됐건 「백인들의 잔치」에 불러준 것은 일본의 높아지 뉘상을 인정해준 셈이기도 하다.
일본의 반응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이런 해석이 꼭 아전인수만은 아니다. 이미 유럽인들 사이에서 일본인을 물건이나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팔아먹는 황인종으로 보는 시각은 찾기 어렵다. 과거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보통 유럽인들에게 일본은 우리가 잊지 못하는 그들의 부도덕성보다는 불황을 모르는 대단한 나라로 비칠 뿐이다. 그래서 회의장에서 몇걸음 옮겨 놓을때마다 부딪치는 일본 기자들을 대하는 마음은 혼란하다. 인구 50만명의 작은 북구의 도시에서까지 일본은 잊을 수 없는,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착잡하게 돌아보게 하는 악연을 되새겨 본다.<헬싱키에서>헬싱키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