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매매”서 “사기변질” 가능성/서류 엉성… 돈 너무 쉽게 내줘/재투자·신변 노출도 “비상식”/범인들 사기로 생각 안했거나 「뒷보호」 믿은 인상정보사 부지 매매사기 사건은 여전히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채 갈수록 혼미속에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졌던 전 합참군사 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52)가 검거됨에 따라 급진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됐던 사건수사는 아직 숱하게 제기된 의혹의 한가닥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오히려 김씨의 진술은 현재까지는 기존의 의혹에 또다른 의혹을 더하는 결과만 낳고 있다.
김씨의 진술에 의하면 자신은 지난해 12월말 평소 알고 지내던 임모씨의 소개로 정건중씨(47) 등을 처음 만났으며 올해 12월21일 이들이 자신을 매도인으로 세워 작성해온 허위 정보사부지 매매계약서에 날인해주고 81억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김씨가 정씨 일당을 알게된 시점은 지난해 12월23일 정씨 일당이 제일생명측과 정보사 부지 3천평을 6백60억원에 매입키로 매매 약정서를 작성한 이후라는 주장이다.
김씨 말대로라면 제일생명은 정씨 일당으로부터 아무런 문건하나 제시받지 못한 상태에서 말만 듣고 무조건 매매약정을 맺었으며 당일 곧바로 계약금조로 2백50억원을 은행에 예치시켰다.
제일생명측은 돈을 입금시킨 훨씬 뒤에야 김씨가 매도인으로 돼있는 매매계약서를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제일생명의 거래행위는 말하자면 『물건이 나왔다』는 얘기만 듣고 물건이 뭔지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덥석 돈부터 준 셈이다. 더구나 나중에 받아본 「물건」도 고무인에 막도장이 찍혀 누가봐도 한눈에 엉성함을 알아볼 수 있는 서류였는데도 잔금을 어음으로 몽당 치러 정산을 끝내 버렸다.
일상적인 소규모 상거래에서 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을 재테크에 능한 대형 보험회사가 저지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의혹들은 정보사 부지 매매가 실제로 가능성 있게 추진됐거나 아니면 일개 군무원에 불과한 김씨 이상의 또다른 배후가 있을때에만 해소될 수 있다.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드러나겠지만 어떤 경우든 김씨는 중간 연결선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부동산을 전문으로 다루는 제일생명이 군재산을 매매할때는 현직 장성인 국방부 총무과장 이상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김씨의 진술상의 모순이나 제일생명측의 석연치 않은 태도 등이 모두 어떤 「사실」을 은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의혹과 무관치 않다.
또 정씨 등 사기범 일당이 제일생명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자금으로 전국 곳곳에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사실도 이같은 추리를 뒷받침해주는 것들이다.
사기범들이 범행결과 챙긴 돈을 빼돌리거나 부동산 매입에 사용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사기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범행」후 최근까지 4∼5개월 이상을 버젓이 노출된 상태에서 생활했다는 것도 의혹을 더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의문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이 사건은 몇몇 토지 브로커들에 의한 단순 사기사건이 아닌 전혀 다른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김씨 등은 이 거래를 사기범행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보사 부지에 대한 군사시설 지정해제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배후인물과 집단이 이 일을 추진하다 모종의 여건변화로 인해 중도포기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기행각으로 변질됐으리라는 추정이다.
제일생명이나 국민은행의 내부관계자들끼리도 진술이 엇갈리고 국방부에서 이미 지난달 9일 일찌감치 김씨의 범행 가담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인 검거노력을 보이지 않았던 모호한 태도들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이 경우 제일생명과 국민은행은 물론 김씨 등 사기범 일당도 모두 피해자로 볼 수 있으며 더욱이 제일생명측의 매수계약분이 정보사전체 부지 1만7천여평중 3천평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볼때 같은 방식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나 기업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이같은 상황이 아니고 김씨 등이 실제로 사기를 하려 했다고 가정한다해도 이들의 행적으로 볼때 「실력」을 갖춘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함께 최근 증권가 등 시중에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정치권 관련설 등도 수사당국이 반드시 짚고 해명해야할 부분이다.<이준희기자>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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