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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소 공군 7만명 참전”/영국학자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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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소 공군 7만명 참전”/영국학자 주장

입력
1992.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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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마크·조종사 군복 중국군 위장/미선 전면전 확대 우려 알고도 모른체【런던=원인성특파원】 6·25 당시 소련은 연인원 7만명에 이르는 공군 병력을 중공군으로 위장해 참전시켰으며 미국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미소간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소련의 참전사실을 부인해왔다고 영국학자가 주장했다. 런던 킹스칼리지 전쟁학과의 객원교수인 존 할리데이는 당시 한국전에 참전했던 소련군 사령관과 미국측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5일자 업저버지에 기고했다.

할리데이에 의하면 소련 303 항공사단장으로 한국전 참가 소련공군을 지휘한 게오르기 로보프 대장은 소련공군이 미그15기 32대로 50년 11월1일 전쟁에 첫 참가했으며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 북쪽의 단동에서 기지를 두고 미국공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소련군은 참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투기의 마크와 색깔을 중공군기처럼 위장했으며 조종사들도 중공군복을 입도록 했다. 로보프는 스탈린이 중국의 요청으로 참전은 했으나 참전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투기 파견규모를 제한했으며 활동범위도 압록강 일대로 통제했다고 밝혔다.

할리데이는 미국이 당시 이같은 소련공군이 참전사실을 조종사들의 교신내용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지만 양대 강국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일체 비밀에 부치고 공개적으로는 소련의 참전사실을 부인해왔다고 지적했다. 당시 폴 니츠가 이끌던 미 국무부 정책기획단은 소련의 참전사실을 공개하고 이에 정면대응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기각됐다고 증언했다.

51년 5월 브래들리 미군 참모총장은 비공개의회 증언에서 소련이 미 공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낼만한 제공권을 충분히 갖고 있으나 스탈린이 병력증파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할리데이는 전했다.

그는 미국이 한때 소련과 중국 및 북한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소련이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는 것은 물론 미 지상군과 해군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판단에 따라 이같은 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현재 77세인 로보프는 지난 80년대초 소련의 한국전 참전 사실을 공개하는 저술을 계획했으나 당국의 거부로 보류하다 지난해 한 군사전문잡지에 이같은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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