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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벌린 학회,돈낸 후보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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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벌린 학회,돈낸 후보들(사설)

입력
199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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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아직 5개월반이나 남았는데도 출마후보들은 벌써부터 성급한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지금 너나할것 없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거짓말이 될게 뻔한 공약을 남발하고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선거분위기의 조기과열을 막기 위해 운동을 자제하자고 먼저 제의했던 후보까지 모두가 득표활동에 여념이 없다.문을 열기가 무섭게 마비상태에 빠져버린 개원국회는 남의 일인양 제쳐두고 오로지 대선욕에만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나쁜건 후보뿐만 아니다. 표에 약한 후보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유권자들이 더 밉다. 그 유권자들에게 꼼짝없이 끌려가는 후보들이 때로는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조기 과열현상이 빚어내는 꼴불견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 정치학회가 2일부터 경주의 호화호텔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공공연히 자금지원을 요구한 사실이다.

선거와 관련해서 돈을 주고 밥을 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정치학자들의 모임이 스스로 후보들을 불러 돈을 받고 밥을 얻어먹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학자의 양심과 양식으로 볼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바로 14대 국회의원 총선과 14대 대통령 선거라고 한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들은 깨끗한 선거를 강조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돈내고 밥사라고 손벌리는 학자들의 입으로 외치는 부패정치의 척결이 학생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 진다.

손벌리는 유권자들을 향해 호통을 치거나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정치 지도자들도 정말 딱하다. 그들이 요즘 바쁘게 가는 곳은 비단 이런 학술모임뿐 아니다. 각종 사회단체는 물론 이익단체·친목회에서까지도 표에 과민한 후보들을 불러놓고 자기네들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여러가지 주문을 하고 있다.

이런 저런 요구에 후보들은 많은 곤욕을 당한다. 부당하고 불가능한줄 알면서도 안된다고 거절하지 못한다. 거절하기는 커녕 자진해서 선심공약을 불쑥불쑥 던지는 사례도 있다.

얼마전 여성단체 모임에서 어느 후보는 지방의회에 여성비례대표 지분을 보장하고 각료의 4분의 1을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로부터 며칠뒤 다른 후보는 어느 여성모임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여성장관을 많이 두고 부지사 부시장을 여성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인기발언에 몇사람의 유권자들이 넘어갈까. 후보도 유권자도 이제는 좀 각성할때가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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