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병풍삼아/조촐한 차례상/DMZ 잡초속 “벌초나 했으면” 눈시울분단의 장벽은 선영도 망실하게 했다. 40여년동안 돌보지 못해온 봉분은 이미 무너져 민통선 지대의 잡초속에 묻혀버렸고 조상을 찾아나섰던 성묘객들은 불효의 아픔만을 안고 돌아와야했다.
1일 상오 11시 강원 철원군 김화읍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철책선 앞에는 초라한 차례상 몇개가 차려졌다.
비닐돗자리위에 과일 몇개와 술,종이컵으로 만든 향로만이 놓인 차례상 앞에서 노인 40여명이 철책선 북쪽을 향해 한스런 큰 절을 올렸다.
이북 5도 강원 경기도민회가 내무부와 국방부의 협조를 어어 6·25이후 42년만에 처음 추진한 「민통선내 성묘방문」 행사는 선영을 지척에 두고 갈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되새겨 주었다.
3일까지 계속될 성묘행사에는 철원·화천군 등 강원도내 4개군과 경기 연천·파주군 등 7개군출신 실향민 3백59명이 신청했으며 첫날 철원군 금화읍엔 87명의 성묘객이 모여들었다.
상오 8시께부터 금화읍 사무소앞에 모이기 시작한 이들은 개인차량과 군부대측이 제공한 버스로 선영이 있는 8개리로 향했다.
이들중 가장 수가많은 북측지역 율목리·백덕리 출신 성묘객들은 모두 조상묘소가 비무장지대안에 있는데 철책선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비무장지대가 아닌 민통선내 성묘만이 허용된다는 부대측의 설명에 『민통선지역이야 사전허가만 있으면 출입이 가능해 이미 몇차례 간적도 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이냐며 항의하다가 『비무장지대 출입은 정전협정상 금지사항』이라는 답변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철책선 앞에 옹기종기 모여 초라한 차례상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인근 청양리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권태형씨(63)는 『6·25때 열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례도 못치르고 참외밭에 묻고 피란나온 뒤 벌써 42년이 흘렀다』며 『철책선에서 3백m도 안되는 아버지의 무덤을 죽기전에 벌초나 할 수 있겠느냐』며 눈시울을 적셨다.
벌초를 하기위해 인천에서 낫과 삽을 갖고온 황대현씨(53)는 『내일이 바로 저곳에 묻혀있는 할아버지의 기일』이라며 『차라리 먼 북녁당에 묻혀셨다면 잊고나 살겠지만…』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생창리로 향한 성묘객 10여명은 묘소가 비무장지대 밖이어서 출입은 허용됐지만 군작전을 위한 지형변경으로 무덤의 흔적조차 없거나 우거진 나무와 잡초때문에 찾을수 없었다.
19세때 징용에 끌려간뒤 53년만에야 찾아온 윤용구씨(72)는 어머니의 무덤이 지뢰밭속에 갇혀있어 가까이 가지도 못한채 먼발치에서 간단한 차례를 지내며 흐느껴 울었다.
『우리가 죽으면 조상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기억이나 해주랴』 실향민들은 실묘의 한을 더한채 금단의 땅을 힘없이 걸어나왔다.<김화=이성철기자>김화=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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