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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우방시대」의 반성(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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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우방시대」의 반성(사설)

입력
199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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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러시아 기함 팔라다호가 거문도에 처음 입국함으로써 한국과 러시아는 첫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30년후인 1884년 조러 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정식 수교가 이뤄졌다.그러나 20년뒤 노일전쟁의 결과로 통상조약이 파기되고 러시아 공관이 철수함으로써 양국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86년이 지난 90년 구 소련과 역사적인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게 되었다.

지금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는 이상옥 외무장관이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문안을 최정 확정했다는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은 양국간의 관계를 우방으로까지 크게 진전시키는 새로운 이정표이다.

내용을 보면 90년 12월 노태우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 채택된 「한소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을 보다 구체적으로 조문화했음을 알 수 있다. 모스크바선언 이라고도 불려졌던 이 선언은 주권평등,영토보전,정치적 독립의 상호존중,내정 불간섭,국제법 준수,분쟁의 평화적 해결,호혜적인 협력증진,각 분야의 교류확대,남북대화 지지 등 양국관계가 지향할 기조로서 여러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이번에 합의된 기본조약은 전문에서 「양국 공통의 역사에 있어서 불안한 시대의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며 자유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체제 등의 가치관을 공동 추구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본문은 「양국은 우방으로서 영속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킨다」 「양국은 양국간 무력위협과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모든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양국은 경제 산업 무역투자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협정체결을 조속 추진한다」는 등 14개조를 담고 있다. 6·25 남침의 공동 모의자요 냉전시대의 적성국을 이처럼 협력의 동반자로 동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국­러시아간의 이러한 우호관계수립은 동북아 질서에도 큰 의미를 갖는다. 유엔평화군 파병 등으로 군국주의 부활이 경계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고 특히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보다 효율적인 부수효과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91년 제주도의 한소 정상회담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불쑥 제의했다가 흐지부지되어버렸던 우호협력조약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기존의 한미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양국 외무장관은 오는 9월로 예정되어 있는 옐친 대통령의 한국방문때 서명하기 위해 문안을 서둘러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기본조약 서명에 못지않게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과거 소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1983년 2백69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한항공여객기 격추에 대한 진상은 아직도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과와 보상 등 러시아가 취해야할 조치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된 일이 없다. 6·25 동란도 마찬가지다. 이 대목은 러시아의 성의표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정부 당국도 동시에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소련과의 수교를 지나치게 서둘러 30억달러 경협까지 주면서도 우리가 먼저 받아내야 할 것을 놓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소련이 몰락한뒤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진전시키면서 유의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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