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처형의 효과지난 26일 하루동안 중국 전역에서 최소한 58명의 마약사범이 사형선고를 받았고,그중 18명은 광동성내 6개 도시에서 선고 즉시 「즉결처분」 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중국식의 공개처형이었을 것이다.
그 하루 전 신문의 국제뉴스면에는 알바니아 어느 도시의 대로상에서 공개처형된채 전시되고 있는 살인범 사진이 실렸다. 높이 목매달린 두 사람을 시민들이 「구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물론 이같은 공개처형 제도가 없다. 지난 80년대 가정파괴범의 횡행을 보다 못한 누군가가 공개처형론을 제기한 일이 있다지만,듣기에도 민망한 헛소리였을 뿐이다.
공개처형은 아니지만 「공개처형 효과」를 노린 무더기 사형집행과 그 발표가 잇달았던 것은 사실이다. 가까운 기록만으로도 90년 봄에 9명,겨울에 5명,다시 91년 봄에 9명을 한데 몰아서 집행한 일이 있다. 그때마다 당국은 「민생치안 확립」이나 「흉악범 척결의지」 등의 부연설명을 달았다. 무더기 집행을 통해서 흉악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정부의 뜻을 알려 흉악범죄 예방효과를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법의 위하력이 실제로 흉악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무더기 사형집행이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치안 현실이나 흉악범 발생빈도,그리고 사형선고자의 숫자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사정도 그러한 논란의 근거가 된다.
지난 19일 서울구치소에서 있었던 어떤 「용서와 사랑」의 장면은 제도자체에 대한 논의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를 지닌다.
그날 3명의 사형수가 김수환추기경이 집전한 의식을 통해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그중의 하나,나이가 가장 어린 김용제(21)에게는 특별한 축하객이 있었다. 서윤범씨(59),「여의도광장 살인질주」사건(91·10·19)의 범인인 김에 의해 살해된 두명의 희생자중 한 어린이의 할머니이다.
서씨는 손자잃은 슬픔에 헤어나지 못하던 지난해 11월말 구치소로 김을 찾아갔다. 서씨가 보기에 김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영혼의 불구자였다. 김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민 서씨는 따뜻한 말과 옷과 편지로 김의 상처난 영혼을 어루만졌다. 「피해자가 용서하였으므로 재판부에서도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는 탄원도 냈다. 「잘못을 뉘우친 또 한사람을 사형시키는 일은 하느님께 죄」라는 것이 서씨의 생각이다.
김은 국졸학력에 시력이 지독하게 나빠 취직을 할 수 없었던 청년이다. 어머니는 14년전에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8년전에 독을 마시고 죽었다. 그는 현장검증때 『사형을 받기위해 범행했다』고 뇌까렸다.
김은 세례를 받으면서 흐느껴 울었다. 서씨에게 보낸,맞춤법이 자주 틀리는 편지에서 「사형을 받겠지만 그래도 용서를 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기쁩니다」고 그는 썼다. 그는 안구를 비롯한 장기 모두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도 적었다.
○김 추기경의 청원
김수환추기경이 「결의문」이라는 제목을 붙인,형식면에서 다소 어색하게 보이는 글을 직접 발표한 것은 서씨의 「미움을 사랑으로 갚은」 행동에 감동한 탓일는지 모른다. 김 추기경은 이 글을 통해 사형제도의 폐지를 우리사회 전체에 대해 절절하게 청원하고 있다. 「생명권 침해에 대한 위헌심판청구」가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는 것도 이 청원의 동기가 되었음직하다.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고 통곡하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에게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박탈하는 사형제도는 믿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단정하는 추기경은 「미움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며 「그렇기 때문에 범죄 피해자 및 가족들에 대한 구원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고 그것을 배가 시키는 것 뿐」이라고 역설한다.
사형제도는 세계 90여 국가에서 이미 폐지되고 1백여 국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선진국들 가운데서는 미국의 일부 주들과 일본만이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유엔에서도 꾸준히 권고하는 사안이다.
○오판의 부가역성
미국에서 나온 한 통계는 1900∼1985년 사이 미국에서는 3백47명의 무고한 죄인이 오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그중 29명은 처형되었다고 한다.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은 그 불가역성이 문제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생명권의 존중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사실이다.
사형수가 된 후 「새인간이 된 사형수」로 거듭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분명히 또다른 살인일 수 있다. 서씨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본사주필>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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