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자존심 훼손” 저지운동/“1년반동안 캠퍼스 이전 추진해왔다”/런던 경제대,반대여론 주도/“상업용아닌 공익위해 써야”【런던=원인성특파원】 런던 한복판의 옛 런던시청 건물이 일본 부동산회사에 넘어가자 일각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 논란이 일고 있다.
런던시가 여러개의 작은 행정구역으로 분할됨에 따라 빈 건물로 남아있는 런던시청은 템즈강변에 국회의사당을 마주보고 있는 영국의 전통적인 건물중의 하나이다. 옛 런던시의 잔여재산처리위원회는 이 건물을 매각하기 위해 원매자를 물색하던중 일본의 부동산 재벌 다카시 시라야마가 지난 3월 이 건물의 매입계약을 체결했다. 일본 개인소득세 납부실적 20위의 시라야마는 오사카 주변에 7만여평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맥도널드 햄버거점과 석유,주류판매망,스포츠클럽 체인 등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이다. 그는 지난 89년 마드리드의 한 호텔을 7백20억원에 사들이고 괌에 1천억원 가량을 투자해 위락시설을 만드는 등 막강한 재력을 갖추고 있다. 시라야마는 6천만파운드(약 9백억원)에 런던시청 청사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곳을 호텔과 쇼핑타운,디스코장,체육시설 등을 갖춘 상업용 복합건물로 개조할 계획이다.
이 청사로 캠퍼스를 옮기기 위해 1년반동안 작업을 벌여온 런던경제대학(LSE)은 이 건물이 일본인 손에 전격적으로 넘어간 사실을 알자 이를 뒤집기위해 분주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캠퍼스를 옮기고 사회과학관계 연구기관들을 입주시켜 이 건물을 영국 사회과학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LSE는 이 건물이 영국의 자랑스런 문화적 유산인 만큼 공공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LSE의 이같은 운동은 의회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이달초 상원은 만장일치로 이 건물이 외국인에 의해 상업용으로 전환되기 보다는 영국의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하원에서도 각당 의원 1백40여명이 동의안을 제출,LSE의 제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이 건물의 처분을 담당하고 있는 런던시 재산처분위원회는 법에 따라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 건물을 팔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감독하는 환경부는 필요할 경우 입찰자중 적절한 매입자를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런던시청 청사를 누구에게 파는가는 사실상 영국정부의 권한인 셈이다. 더구나 시라야마와의 계약은 올해말까지 매입자를 변경할 수 있는 이례적인 유보조항을 달고 있어 영국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 건물을 LSE에 넘길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영국정부는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정부 소위원회에서 몇차례 논의를 했으나 각료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교육 노동장관은 다소 매각수입이 줄어들더라도 명분과 공익성을 고려해 LSE에 주자는 의견인데 반해 마이클 헤젤타인 상공부장관과 주무부서인 환경부장관,재무장관 등은 경제논리를 내세워 더 많은 금액으로 응찰하는 쪽에 팔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료들의 의견분열 때문에 결국 최종 결정은 존 메이저 총리가 직접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가 어떤 쪽으로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LSE에 꼭 우호적인 것만은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구나 정상회담을 위해 7월4일 영국을 방문하는 일본 총리도 이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소문이어서 런던시청 청사가 일본인 손에 넘어갈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수도 한복판의 유서깊은 건물이 일본인에 의해 위락시설로 바뀐다는 것은 국가적인 자존심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도 여론이나 정부의 반응은 너무도 조용하다는 점이다. 이는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외국자본을 한푼이라도 더 끌어 들여야겠다는 경제논리와 영국인들의 「대범함」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런던의 얼굴격인 건물을 일본인에게 팔아넘기려는 발상은 외국인들에게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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