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소입에 부리망(머그레)을 씌워놓고 여물을 주는 격이다』지난 25일 제일은행 강당에서 열린 「중소기업 애로타개를 위한 간담회」에서 85명의 중소기업인들은 자신들의 가슴답답한 처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이 자리엔 이용만 재무부장관과 조순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시중은행장들도 포함,정부의 금융정책 관련자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중소기업인들의 불만은 목에까지 차 있었다.
5시간동안이나 계속된 마라톤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자신들이 겪은 어려움과 좌절을 쉴틈없이 토해냈다. 아울러 자신들의 경험에서 얻어낸 희망들도 제시했다. 간간이 박수도 터졌다.
『서울엔 외국상품을 파는 번듯한 상가들만 쭉쭉 들어서고 있다. 국산상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10년 넘게 수도권일대서 신설이 봉쇄돼있다. 외제 파는 빌딩만 짓고 국산 만드는 공장은 차단하면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근로자 기숙사를 사도토초세를 내란다. 재고가 쌓여 주차장에 제품을 둬도 단속한다. 사업을 도와주려는 법인지 막으려는 법인지 알 수가 없다』
중소기업인들의 말은 절절했다. 정부의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들이 실제로 현장까지 도달해서는 어떤 요인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는지,책상에서의 이론 작업서는 몰랐던 정책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이들이 낱낱이 들추어냈다.
한 50대 참석자는 『거의 모든 드라마들이 중소기업인하면 무조건 외제차를 타고 골프나 치며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는 식으로 묘사,중소기업인들의 이미지가 왜곡돼 있는 것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평소 기름때가 묻은 옷으로 생활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인들로선 일할 맘이 싹가실 정도라고 언성을 높였다.
중소기업인들의 이같은 분노는 간담회에 참석한 이 장관이나 조 총재 등 정부관리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전체적 상황이 야속할 정도로 자신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스스로의 대응노력 역시 특별나게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못마땅하고 자연히 한국경제 전체의 암울한 미래가 분노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들의 발언은 무엇보다도 현장감이 생생했고 내용이 풍부했다. 정부가 마련한 법이나 규정들이 현장의 다양한 현실과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수시로 급변하는 현장을 파악해서 법과 정책을 유연하게 조정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간담회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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