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예술가/노래에 담아/전통창 「신내」형식으로/서두 사죄촌지로 시작/“반성않는 국가…” 가사… 일 순회 연주중정신대의 한이 속죄의 언사나 노래만으로 씻겨 질수 있을까. 일제가 어린 국민학교 여학생들까지 정신대로 마구 끌어갔던 잔학상이 올해 봄 각종 증거자료를 통해 다시 확인된 이후 일부 일본 관리들이 사과발언을 하고 동경지법에서 첫 공판이 열리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를 비롯한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는 일본정부의 전면적인 사죄와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민운동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는 종군위안부의 한을 전통예술형식을 빌려 전달하는 호소력 짙은 노래가 번져가고 있다.
우리의 창과 형식이 비슷한 일본의 무형문화재 신나이(신내·음곡에 맞춰 랑창하는 옛 이야기)에 종군위안부의 피맺힌 삶이 담긴 것이다.
신나이의 예능보유자중 최고령인 97세의 오카모토 분야(강본문미)씨는 스스로 작사·작곡한 「분야 아리랑」으로 최근 일본 각지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다.
오카모토씨는 『노래 한곡으로 종군위안부들이 위로받을 수는 없겠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노래를 만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런 마음에서 곡의 첫 머리에 「사죄촌지」라는 말도 붙였다.
「1940년 16세때 담임인 일본인 교사에 의해 경찰에 끌려가 경찰관에 폭행당한후 위안소에 보내졌다…」는 종군위안부의 이야기가 3분동안 낭독되면서 「분야 아리랑」은 시작된다.
이어 「아리랑… 갈까,되돌아갈까 울고 말았다. 엉망진창이 된 몸,어떻게 집에 돌아갈까나,무정비도를 반복했다. 아직 반성하지 않는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라는 내용의 곡조가 약 6분간 계속된다.
오카모토씨는 지난 4월 종군위안부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사죄,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이 부끄러워 이 곡을 만들었다. 평소 좋아하던 「아리랑」과 자신의 이름을 따 「분야 아리랑」이라고 곡명을 붙였다. 일본 고전인 「난접」과 「명조」에서 일부 곡조를 차용했다.
이 곡을 들은 기타조(북조원일) 동경공대 명예교수는 『정서를 실어 애절하게 이야기하는 신나이에 사회적 문제가 어울릴까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위화감은 전혀 없었다. 모두 숙연하게 들었고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오카모토씨는 지난 16일 동경의 한 근로복지회관에서 지역상공인 50여명을 청중으로 한 연주회에서 마지막에 『한국사람들 모두 건강히 계십시오. 일본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이런 곡을 만들어 부르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오카모토씨는 신나이의 맥을 이어가면서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원폭을 주제로 한 「노 모어 히로시마」,동경 대공습을 다룬 「하동의 도행」 등을 발표,반전을 호소해온 예능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어느 곡보다 더 좋아한다는 오카모토씨는 『기회가 있으면 아리랑을 모티브로 새로운 곡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곡으로 다시 일본 각지를 돌며 공연할 예정이다.<동경=이상호특파원>동경=이상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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