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르비아」에 반발 독립선언·투쟁 이어져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분리독립으로 촉발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25일로 만 1년이 되었다.
유고 유혈내전은 「잘못된 과거」가 그 주요배경이 되어있다. 1918년 1차대전의 승전국들은 유럽대륙의 전통적 강자인 독일계의 오스트로 헝가리제국(합스부르크가)을 해체,그 일원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에 병합해 유고왕국을 창설했다.
6개국 24개종족으로 「모자이크」된 유고는 나치점령기간중 친독일계 공화국과 세르비아 사회주의공화국·왕당파간의 반목기를 거쳐 종전후 공산화되며 아슬아슬한 연합체를 유지해왔다. 티토라는 걸출한 영도자아래 사회주의의 이념적 끈이 연방을 묶는 구심점이었다.
80년 티토사후 대두된 「대세르비아주의」의 부활은 피지배의식에 젖은 비세르비아계 공화국 이탈의 서곡이 됐다. 당시 진행된 동서진영의 데탕트기운은 양편 줄타기를 하던 「티토식 사회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며 연방유지의 핵인 유고경제에 주름살을 더했다.
이런 상황에서 89년 동구공산권의 붕괴 및 독일통일에 이은 소련의 해체 등 일련의 대변혁은 유고의 장래를 단숨에 돌려놓았다. 사회주의를 대신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분출하며 인위적 집합체인 연방은 분열·해체로 뻗어나갔다.
이에따라 지난해 6월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이 연방분리와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 즉시 각 공화국내에 주둔한 세르비아 주도의 연방군이 공격을 개시해 유혈내전은 끝을 모르는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그나마 인종적·지리적으로 유럽지향적인 두 공화국의 이탈은 쉬웠다.
6천여명의 사망자를 내며 반년을 끌어온 두 공화국의 독립투쟁은 지난 1월 유엔 중재하의 휴전이 성립되고 유럽공동체(EC)의 독립승인으로 불안하나마 일단락됐다.
그러나 뒤이어 2월29일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의 경우는 달랐다. 세르비아·크로아티아계 뿐 아니라 회교도 및 소수인종이 뒤얽혀 있는데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와도 인접해 문제해결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교전발발 3개월여만에 7천4백여명이 숨진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앞서 두 공화국과는 달리 「연고권」이 없는 국제사회로서도 경제·외교제재 등 소극적 방법으로 사태악화를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편 알바니아인과 마케도니아인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마케도니아공화국과 세르비아내 알바니아인 자치지주인 코소보에서도 내전 비화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생된 2백50만명의 난민문제는 새로운 기틀을 다지려는 유럽대륙에 또 다른 먹구름으로 떠돌고 있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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