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많은 나라들이 인종갈등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스페인처럼 이것을 관리하는데 성공한 나라도 있지만 이로인해 모든것이 엉망진창이 된 나라도 많다. 소련연방의 붕괴,유고의 비극,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련이 단적인 예이다. 미국만 해도 인종균열이 심한 나라다. 60년대 이래 민권운동이 거둔 성과에도 불구하고 도심에 거주하는 흑인과 소수인종의 생활은 갈수록 참담해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4월말 LA인종 폭동이 터졌던 것이다.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인종갈등이 없다. 단일민족이 항상 좋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지도자와 국민이 제대로 된 생각을 실천할 수 있다면 잘 통합된 사회를 만드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집단과 외집단의 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같은 민족으로서 관용과 포용력을 높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민족의식·공존철학·공평성·사회적 양식만 있다면 누구나 제 몫을 하고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가 다인종 국가에 비해 한결 용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인종분규는 없지만 다른 사회적 균열이 심각하다.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민족의 면에서 포용 대신 제거,관용대신 억압,공존 대신 유아독존,균점 대신 독점의 논리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에 비해 우리 사회의 분열증은 훨씬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분열은 대체로 두가지 징후를 보인다. 하나는 화해불가능한 주장들이 서로 격렬히 싸우는 것이다. 극좌와 극우의 대립이 한 보기다. 이런 극단적인 상태는 이제 많이 벗어났지만,우리가 표방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의 미숙성,정치 지도력의 빈곤,관료제의 경직성 등으로 인해 차이속에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주장들이 마치 화해불가능한 것처럼 간주되는 것인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하나는 불만을 함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적인 세계로 도망쳐 빠져나가는 행동이 증가하는 것이다. 동기는 다양하다. 기대가 있어야 소리를 지르게 되는데 아예 기대가 무너지면 환멸·무관심·냉소·불만만이 커진다.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이기주의가 창궐한다. 남이야 어떻게 되건,사회야 어떻게 변하건 간에 나의 이익만을 챙기는 심리가 앞선다. 이런 맥락에서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과소비가 춤을 춘다. 마약·범죄·알코올 중독도 는다.
이 도피의 병리가 함성의 대립 못지않게 전환기 사회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참여의 통로가 막혀 있거나 유명무실한 곳에서 도피적 반응은 만연된다. 이것은 당장은 비정치적이고 집권층에 해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회발전의 암적인 요소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통합의 중차대한 과제에 부딪친다. 힘에 의했든 관행에 의했든 아니면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든 간에 사회의 주요 흐름으로부터 배제된 다양한 집단을 어떻게 존중받는 사회성원으로 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세가지 쟁점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지역차별의 극복에 관련된다. 지난 30년간 이른바 TK세력이 정치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사회전체에 확대 재생산된 특혜와 차별의 불공평 및 경제사회 발전의 격차를 극복하는 과제가 우선 긴요하다는 것이다. 형식논리로 보면,기득권을 누리는 측과 피해를 당하는 측에 모두 「지역감정」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사회통합의 관점에서 핵심적인 것은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측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특혜와 차별의 관행을 실질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둘째는 빈부격차를 극복하는 것이다. 계급적 불평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과제가 등장한다. 소수 재벌에로 모하지는 가공할 경제력 집중화를 막고 노동대중의 참여와 복지를 증진시키는 과제가 중요해진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나왔다면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정당도 나오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핵심 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조직된 노동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자영업에 고용된 노동자,농민,도시빈민까지도 같은 시민으로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고 자기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갖추게 될때 사회통합은 그만큼 확고해진다. 즉 산업민주주의가 사회통합의 바람직스러운 요건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이념의 균열를 치유하는 과제가 등장한다. 냉전시대의 체질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는데 있다고 본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선동하지 않고 민주주의 질서를 수용하면서 학문과 사상의 시장안에서 경쟁한다면,누구나 각자의 사상을 조리있게 펴고 발전시켜 나갈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의해 젊은세대의 진보적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삼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혹자는 우리의 미래가 경제의 선진화에 달려있다고도 하고 혹자는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전환기 사회이행의 열쇠는 새로운 사회통합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성공해야만 도피적 병리현상을 제거하면서 사회집단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취적 기상을 보이고 있는 젊은세대의 변화욕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절대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서울대교수·뉴욕 컬럼비아대에서>서울대교수·뉴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