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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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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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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필준 보사부 장관께.징코민사건의 여진이 생각보다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더니,이제는 징코민 제조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3백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해서 좀 어리둥절한 생각이 없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그 소송취지를 들은 즉,보사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국립보건원의 무책임,장관의 경솔한 검찰 수사의뢰 등이 다 나무람의 이유로 되고 있습니다. 장관이 약무행정의 구조적 비리를 수술한다고 빼들었던 「읍참마속」의 칼이 쑥스러워진 꼴입니다. 장관의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아서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건 경위는 아무래도 장관이 책임지고 있는 보건행정이 무원칙·무기력·무위무책에 빠져 있음을 말해 주는 것 아닌가 싶은데,어떻습니까. 혹시 이런 것이 이른바 「6공누수」란 것과는 상관이 없겠습니까.

뒤늦게 이처럼 하기 민망한 말을 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있은 뇌사=장기이식 수술이 보사부의 무원칙·무기력·무위무책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보건 행정이 이래도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번 중앙병원의 뇌사=장기이식 수술이 제기한 뇌사인정 문제에 대하여,보사부 당국자는 내년도 예산에 용역비를 반영하여 외국의 실태를 조사하고,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보사부가 중앙병원측에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음과 아울러,사건의 형사처벌 문제는 검찰이 결정한다,이번 이식수술은 국민들이 뇌사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한국일보 6·19).

숨김없이 말해서,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혀를 찼습니다. 뇌사인정 문제가 제기된지가 언제인데,이제사 겨우 「내년도 예산」을 읊고 있습니까. 또 현행법상 분명 살인행위에 해당하는 「모험」을 일부 의료진이 거듭 거듭 강행하고 있는 터에,그 것은 잠꼬대나 다름 없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 것이야 말로 무원칙·무기력에,더하기 무책임 아니면 무엇입니까.

나는 이 모양이,뇌사=장기이식에 대한 장관의 소견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은 뇌사인정 문제에 대하여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보사부가 앞장서지는 않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때가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서울신문 4·6).

옳은 말입니다. 뇌사인정 문제는 일부 의료진의 생각처럼,정부가 어느날 결단을 해서,시체해부·보존법의 몇 조문을 고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보사부 방침의 기본은 수긍할만 합니다.

그러나 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설될 때까지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사경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어떻게 하렵니까. 살인죄를 무릅쓰는 「용감한 의사들」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보기에,이런 물음들 앞에서 장관이나 보사부는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판단정지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문제가 사람의 생사를 다시 정의한다는 점에서 매우 미묘하고,하루 아침에 사람의 생사를 갈라 놓을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라 말해서,현행법상 뇌사=장기이식은 분명한 살인인데,보사부는 이 점에 대한 판단을 오로지 검찰에 맡겨 버리고,사실 조사도 않고 있습니다. 보사부가 형사정책과 의사정책을 구분 못할 뿐 아니라,뇌사=장기이식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의욕이나 능력이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보사부가 이번 일을 찬찬히 조사 했다면 아마 많은 문제를 발견했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번 장기이식은 각막과 신장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뇌사=장기이식만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사후 장기기증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음은 모처럼의 뇌사자의 심장·췌장 등의 장기는 이식받을 환자가 없어서 그냥 썩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장기이식을 말하고,뇌사인정이 시급함을 강조하지만,정작 이를 위한 장기이식 정보망 등은 전혀 정비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보사부로서는 뇌사인정 문제에 대한 계몽과 아울러,사회적인 합의 도출을 위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예로 드는 외국에서도 논의에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생각하고,이 문제 만큼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논의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보사부가 엄격한 원칙을 세워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폭 넓은 논의의 결과로 어떤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뇌사=장기이식은 살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용감한 의사들」이 만들어 내는 기정사실과 그 충격이 사람의 생사에 관한 국민적 논의를 지배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 보건행정이 생각할 것은 뇌사인정이라는 첨단적인 문제만이 아니라,우리 의료수준이 달성한 장기이식의 효과일 것입니다. 장기이식을 만능시할 것은 없지만,그로써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그에 대한 나름의 정책 마련이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뇌사자의 장기가 아니라도,충분한 장기를 어떻게 확보하며,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뇌사인정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나중일에 관하여,보사부가 구실을 시작한다면,나는 앞에 말했던 무원칙·무기력 무위무책 운운을 당장 철회할 용의가 있음을 말해두고자 합니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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