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청산” 과감한 핵감축/「탈냉전신질서」 본격 진입【워싱턴=정일화특파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17일 미 상하양원합동회의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는 영원히 넘어졌다』는 요지의 감동적인 연설을 한후 이날 하오 백악관에서 7개항에 걸친 미소 공동협약에 서명함으로써 4일간의 방미일정을 모두 마쳤다.
옐친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은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남북한 핵사찰 문제와 KAL기 폭파사건 진상규명 문제를 한꺼번에 거론함으로써 우리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나들이로 평가할 수 있다.
양국정상의 공동기자회견직후 나온 한반도 핵문제에 관한 공동발표문은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돼온 북한의 핵무기 개발저지에 러시아가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동발표문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의 준수는 물론,믿을 수 있고 효과적인 남북한 상호사찰을 촉구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은 폐전술가능성에 쐐기를 박고 있다.
옐친 대통령이 4일간의 미국 방문을 통해 양국관계에 관해 강조해온 사항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공산주의는 철저히 부서졌고 또 부수겠다는 약속이고,둘째는 러시아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서는 경제지원을 비롯한 미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난 70년간 공산주의의 종주국 역할을 해왔던 구 소련의 실세인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이번 방문중 보여준 과감한 탈냉전정책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옐친은 적이 아닌 친구로서 과감한 대미협상에 나섰다.
우선 그는 냉전시대의 미소 적대관계를 유지시켜오던 핵무기를 과감히 감축하는데 앞장섰다.
미러시아는 그들이 갖고 있는 1만2백37개의 핵탄두를 3분의 1선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서기 2003년까지 미국은 핵탄두 3천5백,러시아는 3천개만 갖기로 했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지상발사 다탄두 핵미사일(MIRV)은 핵탄두를 모두 없앨 예정이다. 러시아는 이 조약의 서명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SS18다 탄두미사일의 경계태세를 일방적으로 해제해 미국을 향한 총부리를 내렸다고 말했다.
또한 잠수함 발사미사일의 경우도 현재 보유수의 3분의 1선인 1천7백∼1천7백50개로 핵탄두를 감축키로 했는데,이 잠수함 발사미사일의 경우 러시아는 이 보다 더 감축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측면에서 뿐 아니라 미국의 동반자(Partnership) 또는 친구(Friendship)로서 체결한 양국간 일반협약의 양도 엄청나다.
17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베이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러시아 고위관리,샘 넌 의원을 비록한 미 의회지도자,그리고 1백50여명의 내외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시옐친이 서명한 미러시아협약만도 7개나 됐다. 미러시아간 동반자 및 우호관계를 위한 헌장,전략공격무기 감축을 위한 공동이해서,지구보호체제를 위한 미러시아 공동성명,무기의 파괴 및 안전관리와 무기확산방지를 위한 미러시아협약,우주협력 협약,소득세 이중과세방지를 위한 미러시아조약,상호투자조약 등.
지난 70여년 동안 얼어붙었던 미러시아 관계가 하루아침에 봇물터지듯 한꺼번에 이뤄진 것이다.
이날 7개 조약에 대한 서명식이 열린 백악관 이스트 룸에 나온 옐친 대통령은 약간 흥분해 있었다. 그는 6번째 서류에 서명한후 서명이 다 끝난줄 알고 부시 대통령에게 서명한 만년필을 바꾸자고 말하기도 했고,기자회견이 채 끝나기 전에 이날 행사의 성공을 만족해 하며 부시에게 악수를 청해 부시 대통령을 약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옐친은 이스트 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차대전·한국전·베트남전 그리고 소련 상공에서 격추됐다고 발표한 9대의 미군기로부터 체포한 미군포로 및 실종자문제와 KALOO기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브레즈네프,고르바초프 등 소련 지도자들이 『모른다』는 말로 속였다고 이들을 힐난한후 자신은 모두 KGB 서류와 공산당중앙위 비밀서류를 뒤져 사건의 진상을 반드시 추적해 이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옐친은 『이들을 찾아 만일 살아있다면 가족품으로 안전하게 돌려 보내겠다』며 과장된 제스처를 쓰기도 했다.
옐친은 물론 미국의 경제적 지원도 호소했다.
만일 미국의 지원으로 러시아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백40억달러의 차관을 얻어내면 이를 루블화안정에 투입해 일단 루블화의 국제화폐 교환력을 회복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정부가 강력히 실시하고 있는 자유재산보호법·시장경제법 등이 루블화의 안정과 결합되면 국제투자를 얼마든지 받아들일 여건이 된다면서 많은 미국투자를 희망했다.
옐친은 17일의 상하 양원 합동회의연설에서 이 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의회가 이 법을 과연 조속히 통과시킬지는 아직 아무런 보장도 없다. 그러나 미러시아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관계는 실질적으로 냉전시대를 청산하고 실질적 우방관계로 돌아선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그 우방관계가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의 현실로 볼때 빠른 시일내에 실질적 상호이익의 단계로까지 진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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