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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주권 유린 “강대국 횡포”/미 대법원 「범인납치」 판결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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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주권 유린 “강대국 횡포”/미 대법원 「범인납치」 판결 안팎

입력
199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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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암기 사건등 관련 사법적 정지작업” 분석미국이 추구하는 「세계의 경찰」 역할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미 연방대법원은 15일 미국 정부가 상대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 법률을 어긴 범죄용의자를 현지에서 체포,미국 법정에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이 범인 인도협정을 체결한 주권국가의 반대에도 불구,범인을 강제 납치하는 불법 행위에 대해 미 사법부가 면죄부를 발급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85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미 마약단속 요원의 살해사건. 미국은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멕시코인 의사 움베르토 알바레즈 마카인을 기소하기 위해 멕시코인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멕시코 사설탐정은 수년간에 걸친 추적끝에 90년 알바레즈 마카인을 체포,양국 국경부근에서 그를 미국측에 인계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를 양국간의 범인 인도협정 위반이라고 미국측에 강력히 항의했고 피고인도 미 법정에서 「불법」이라며 멕시코로 귀환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은 미 행정부의 행위를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행위로 간주,피고인을 본국으로 되돌려 보낼 것을 명령했다. 항소심을 맡은 제9순회법원도 하급법원의 심리를 정당한 것으로 판결 했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1·2심 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연방대법원은 15일 알바레즈 마카인사건 상고심에서 미 행정부의 상고를 받아들여 미·멕시코간 범인 인도협정으로 인해 미 정부관리들이 그를 기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미 연방법원의 결정이 알려지자 미 재야법조계는 물론 사법부 일각에서도 미국의 경찰권을 전세계로 확대하려는 횡포라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행위라고 성토하고 있다.

국제법 전문변호사인 프랑스의 아르노 클라스펠트씨는 『용의자를 세계 어느곳에서라도 마음대로 납치할 수 있다면 국가간의 범인 인도협정은 어디에 쓸 것인가』고 반문했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이스라엘 비밀경찰 모사드의 나치전범 색출을 「있을 수 없는 행위」로 규탄해온 미 사법부가 미국이 저지른 유사한 행위를 용인한 것은 강대국 논리라는 지적이다.

모사드는 지난 60년대초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던 나치독일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이스라엘 법정에 세워 사형판결을 받게 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범죄용의자가 다른 나라로 도피했을 경우에도 그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는 법률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거센 비난과 압력을 받았었다.

그러나 미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현재 마누엘 노리에가 당시 파나마 대통령을 마약사범으로 강제 납치해 미 법정에 세워놓고 있는 상태이다. 미 행정부는 알바레즈 마카인 사건에서 패소할 경우 노리에가 사건처리가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미 행정부의 부도덕성이 부각돼 부시 대통령의 재선가도에 암초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은 논리는 지난 88년 스코틀랜드의 로커비상공에서 폭파된 팬암기 사건에도 적용된다.

미국은 로커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리비아인 2명의 인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제재 결의안까지 동원하는 강공책을 구사했다.

그러나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는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범인 인도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팬암기 폭파범에 대해 강제납치 등 마지막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판례,즉 사법적 정지작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판결은 보수성향의 대법원 판사들이 미 행정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적 행동으로 귀착된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장기집권체제 아래서 임명된 대법원 판사들이 집권당에 대해 「보은」 형식으로 답례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이익에 앞서 세계평화와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진정한 「세계속의 경찰」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이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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