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기 「국가장래」 지도력이 좌우/억제 일변도땐 오히려 혼란만 격화/정당성 갖춘 지도력만이 문제해결어느 사회든 집단간의 사회적 갈등은 있게 마련이고 갈등은 사회를 혼란시켜 심하면 사회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지만 이를 잘 해소하기만 하면 오히려 발전적인 변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사회적인 갈등이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관건은 정치지도자와 정치권의 정치력이다.
정치 지도자나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민주적인 정치운용을 목표로 하는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접근은 갈등하는 집단 또는 계층들이 극한 투쟁을 피하고 서로 양보와 타협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아가 전체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도모하는 결과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바람직한 것인 만큼 현실적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난 반세기 가까운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의 정치권과 정치 지도자들이 드러낸 제일 심각한 약점은 바로 이 갈등조정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쳐야 할 고질로 남아 있다. 광복후의 분단 고착과정에서 첨예했던 이념적·정치적 갈등을 끝내 해소하지 못한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에서 비롯하여 정치권력의 독점을 둘러싼 분쟁이 갈등의 핵을 이루며 오늘의 어지러운 정치문화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부문간·계층간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도시와 농촌,노동자와 사용자,빈부계층간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정치갈등 속에 싹튼 지역갈등과 세대간 갈등이 사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문제는 이처럼 갈등이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오고 있는데 대하여 정치권이 대응해온 자세와 행태에 있다. 자유당에서 공화당·민정당 정권에 이르는 권위주의적인 정권기에는 일방적으로 갈등규제 또는 억제의 전략에 매달려 경직된 반응을 보임으로써 도리어 갈등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비하여 민주당 정권은 격렬하고 다원적인 갈등을 수용하지 못한채 극심한 혼란끝에 군사쿠데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민주화와 자율화를 추진한 6·29이후의 정국 또한 폭발하는 요구의 상충으로 인한 과격한 갈등을 슬기롭게 해소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하여 정치는 표류하고 경제는 침체하며 사회는 방향감각을 잃고 흐느적거리는 형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자율화란 일정한 정도의 난맥상을 수반하게 마련이므로 이런 때일수록 참된 정치 지도력이 마음껏 발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혼란에 빠진 사회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과감하게 갈등적 요구를 수용하며 필요할 때는 결단성있는 결정을 내려 안정속에 국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지금 우리 사회는 전 분야에서 매우 어려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온 사회가 더할 나위없이 분열되고 무질서한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제는 지도자와 그가 이끄는 정치권이 이러한 갈등과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갈등조정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다만 이같은 갈등조정능력이 단순한 개인적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지도자는 갈등의 원인,당사자들의 욕구나 이해관계,그리고 갈등과정의 역학 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현명한 판단에 기초하여 해결방안을 강구하여야 하며 아울러 갈등해소의 방향에 대한 경륜으로 국민에게 미래를 보장하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자질이나 식견만으로 갈등조정과 해결이 절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과 정권의 정당성이 결여되면 갈등하는 집단이나 계층이 정치적인 해결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갈등조정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여태까지의 권위주의적 정권들이 강력한 국가권력으로도 갈등을 쉽사리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격렬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한편 정당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던 정권들은 정치권 내부의 분열과 지도자의 능력부족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갈등을 일으키는 국민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정권이 원초적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함은 물론 이미 발생한 갈등해결엔 지도자의 개인적 자질 외에도 도덕성과 정당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새겨야할 것이다.<김경동 서울대 교수·사회학>김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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