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여론 수렴없이 졸속처리/모호한 법조항 논의도 불충분/전문가들 “눈앞의 타협 우선시하는 일 한계 증명”【동경=이상호특파원】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중의원 통과는 「시간문제」가 됐다.
일부 일본 언론은 이 법안처리가 패전후 일본의 헌법체제 및 안보·방위정책의 근본적인 변경을 의미하는 「역사적 선택」이며,따라서 이번 국회는 「일본의 진로를 좌우하는 역사적인 국회」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보여준 파행성은 앞으로 이 법안의 진로에 대해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PKO법안은 재수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한 국회심의가 부족했으며 무엇보다도 국민여론을 폭넓게 수렴했다고는 보여지지 않기때문이다. 법안처리 전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자위대파견 문제에 대해 반대의견이 더 많거나 찬성이 많은 경우에도 과반수에 미달했다.
때문에 일본정부 및 자민당 등에 의한 일방적인 PKO법안 처리는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한 요소때문에 더 큰 논란의 소지를 처음부터 안고 출발하게됐다.
특히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법안을 심의하게 되는 경우 이번 국회처리 방식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커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자민·공명·민사당 등 3당은 중의원에 다시 넘어온 PKO법안에 대해 전에 한번 다루었기때문에 본회의에서의 취지설명은 필요없다며 사회당 등의 반대를 뿌리치고 바로 특별위원회로 넘겼다.
하지만 지난 90년 11월 이 법안의 전신인 유엔평화협력법안을 폐기하면서 자·공·민 3당은 ▲헌법의 평화원칙을 유지하면서 유엔중심주의를 관철한다 ▲자위대와는 별개의 협력조직을 구성한다 ▲그 조직은 난민구조 및 재해원조에 파견한다는 합의문서를 작성했었다.
따라서 비록 법안 자체가 다르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국민여론도 반대가 압도적이다. 지난달 중순 「전국 시민투표 실행위원화」라는 시민단체는 PKO법안의 찬반을 묻는 전국규모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투표총수 13만7천1백3표중 찬성은 1만5천3백21표로 11.2%에 불과했다. 반대는 12만1백7표로 87.5%였다.
또 PKO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한 직후인 9일 미이니치(매일)신문이 전국 1백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조사결과 PKO법안에 찬성하는 사람은 34명인 반면 반대하는 사람은 63명이었다. PKO법안 심의에 대해서도 충분했다는 측은 1명에 불과했고 77명이 불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니혼 게이자이신문이 지난 5∼8일 전국 1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자위대 파병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야된다』가 15.1%인데 비해 『어디까지나 반대다』는 36.6%였다. 『각국과의 관계에서 그만 둘수는 없다』가 40%였다.
헌법 학자와 변호사 등 법률가·학자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헌론」을 주장하고 있으며,동경 각지에서는 연일 반대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PKO법안 자체의 애매모호한 점도 상당히 많다.
아사히(조일)신문은 10일자 사설에서 최소한 5가지 점을 이번 중의원 심의에서 분명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유엔 평화유지군(PKF) 후방지원중 주요업무와 밀접한 관련있는 작전의 동결은 왜 법안에 명기하지 않고 3당의 「보족견해」에 머물렀는가 ▲그 「견해」자체도 극히 애매한 표현으로 되어 있는데 그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가 ▲동결 해제의 조건은 무엇인가 ▲동결되지 않은 후방지원 업무에의 자위대 파견은 왜 국회사전승인 대상이 아닌가 ▲국회사전승인에 대한 「7일 이내」라는 규정은 국회심의를 제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등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법안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충분한 심의없이 처리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정치의 본질적인 한계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즉 일본에서의 의사결정 및 합의형성의 기본은 「현실적인 이해조정』이며 리더십이 조정능력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능력은 내정에서는 기능을 발휘,전후 경제발전에서 경제대국으로 이끄는데는 원동력이 됐지만 국제화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현실적 이해조정」은 눈앞의 타협을 우선해 때때로 목적과 이념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70세 가량의 재일한국인이라는 독자는 전화로 『PKO법안에 대해 공명,민사당에 항의했더니 「국내문제」라며 간섭하지 말라고 하더라』며 분개했다.
정치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이 새로운 역사의 막을 여는 PKO법안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적 후진성을 어떻게 극복할 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