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켜야 한다. 이것을 안지키면 질서의식의 바탕인 공중도덕이 무너지고 재화보다 귀한 시간의 손실을 입는다. 약속은 반드시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그 피해의 파장은 제3자에게까지 번져간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생활이나 시민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지난 1950년대엔 한동안 한국식 영어인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약속장소에 1시간쯤 늦게 나타나는 것을 예사로 알았다. 실업자가 득실거린 시대의 자조어린 탄식이라고나 할까. 성장 제1주의시대가 되면서 이런 악습은 저절로 없어졌다. 세태가 바쁘게 돌아감에 따라 새로운 악폐가 생겨나고 좀체 고쳐지지 않게 되었다. 「예약문화」의 불발이다.
형태가 달라진 코리안 타임의 재연이라해도 할말이 없다.
다중이 움직이는 스피드사회에선 예약의 편의가 필수적이다. 자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그러하다. 교통의 경우,거리뿐 아니고 시간의 단축 때문에 예약제도를 활용한다. 그러나 이것을 활용하지 않고 악용하는 사례가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언제나 붐비는 철도·항공·숙박 등의 예약에서 부도율이 23∼32%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 고약한 현상은 불이익이나 벌칙조치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약속 불이행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이기적인 얌체행위와 다를바 없다.
물론 예약을 파약해야 할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빈발하는 사회생활에서 불의의 사태는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그런땐 사전에 해약하면 된다. 하지만 약속 불이행의 본질은 다르다. 약속쯤은 우습게 여기는 자기본위의 사고와 시민의식의 결핍이 이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시민사회의 최대 덕목은 공동선의 추구이다. 자기 하나를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다수의 이익을 살린다는 뜻이 중요하다. 나 하나 왔다 갔다 하는게 어떠랴 하는 안이한 발상이라면 사회의 규율과 질서는 지탱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과 같은 산업과 정보사회에선 시간의 긴요성이 날로 늘어가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 하나의 약속불이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우리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핑계를 내세우는 현상이 드세다. 개인의 핑계가 다수나 공중질서의 피해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예약만이 아닐 것이다. 질서의 바탕인 약속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한,우리는 문화인의 긍지를 가질 형편이 안된다.
거듭 밝혀두지만 약속은 질서의 바탕이다. 따라서 위약은 반질서 반문화의 표본과 마찬가지다. 예약의 파기를 사소한 개인일로 보는 것 부터가 잘못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믿음과 책임의 사회가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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