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장사꾼 탈피” 47년 「비원」/“군비증강 세계질서 주도” 공언【동경=문창재특파원】 일본 참의원 특별위원회가 5일 새벽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을 가결,2차대전 이후 처음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길이 열리게 됐다. 앞으로 참의원 본회의와 중의원특위 및 본회의 통과절차가 남아있지만 이 법안을 찬성한 공명 민사 두 야당이 집권 자민당을 전폭 지지하고 있어 이달중 이 법안의 정식통과는 거의 확정적이다.
자위대 해외파병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를 크게 높여주는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며 따라서 인접국가들은 물론 구미 각국도 이 법안의 심의과정에 비상한 관심을 쏟아왔다.
자위대 파병이 일본의 국제지위에 큰 전환점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대국 일본이 마침내 정치대국으로 변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위대 파병이 곧 군사대국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경찰군의 역할을 하는 유엔평화유지군(PKF)에 당당히 참여함으로써 일본의 정치적 입김이 크게 강화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이왕 평화유지군의 일원이 되었으니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개편·강화하자」는 명분을 만들어주게 될 것이다. 「무익조 자위대」가 명실상부한 일본 황군으로 재탄생할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참담한 전화를 딛고 일어선 경제대국 일본의 「비원」이었다.
냉전시대의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돈은 많지만 힘이 없는 「장사꾼」 신세였다. 미국과 소련이 팽팽하게 대립한 긴장의 시대 일본은 미국의 그늘에 가려 존재조차 실상대로 부각되지 못함을 억울해 해왔다.
표면상 「일본 대전환」의 직접 계기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혁에 뒤이은 걸프사태였다.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결행하면서 미국은 일본의 힘이 필요했다. 우선은 막대한 전비부담을 덜어야 했다. 1백30억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제공하면서도 일본이 아까워 하지 않은 것은 미국의 「인적공헌」 요구 때문이었다. 자위대를 다국적군에 보낼 수만 있다면 비원은 자동적으로 풀린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은 다국적군의 국제성을 높이고 모양새를 더 하기 위해 자위대 파병을 요구했지만,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일본의 평화 헌법정신에 정면 배치되는 일이어서 당시 그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쟁을 목적으로 한 다국적군에 자위대를 보낸다는 것은 분명한 위헌이었기 때문이다.
낙담한 일본정부와 지도자들이 착안한 것이 캄보디아 사태였다. 냉전이 종식된후 정전감시 치안유지 무장해제 등에 동원되는 PKF가 파견될 것이니 거기에 자위대를 보내자는 계산이었다.
「전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평화유지활동을 주임무로 하는 것이니 평화애호의 헌법정신에도 부합된다」는 논리를 개발,위헌논쟁을 「극복」했다. 이 논리로 「돈도 많이 벌었으니 국제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때가 됐다」는 국민의식을 계발하는 데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이 명분대로 평화유지 활동에 국한된다면 의심이 남는대로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계 지도자들의 속셈은 의심스런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차세대 지도자의 선두주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 다케시타(죽하등)파 회장대행은 장차 자위대를 「한국동란형」 유엔군에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동란형이란 소련이 빠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것으로,완전 합의가 아닌 걸프사태때의 다국적군 같은 성격이었다.
현재 캄보디아 통치를 대행하고 있는 유엔 캄보디아 잠정통치기구(UNTAC)의 일본인 대표인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씨는 캄보디아 이외에 PKF출동이 필요한 곳으로 미얀마,캐슈미르와 함께 한국을 꼽았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자위대를 보내야 한다는 발상이 이 두사람의 공언으로 표면화 되었다.
다케시타 전 총리는 최근 미국에서 일본의 국방예산 증액 불가피성을 역설한 바 있다. 냉전후의 새 국제질서 조성과 유지에는 미국과 일본의 역할분담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므로 미일 안전보장 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아시아 인접국가들이 우려하는 방위예산 증대는 불가결 하다는 논리였다. 재정이 어려운 미국을 대신해 군비를 증강,쌍두마차로 이 세계를 끌어 가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부 학자들 사이에도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 미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저서를 시리즈로 써내는 유명한 국제정치학자는 「저팬 애즈 넘버투」(JAPAN AS NO. 2)의 길을 제안하고 있다.
넘버원의 길을 모색하기에는 아직 미국이 너무 강대하니 당분간 세계 제2위 국가로 만족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벌써 제2의 지위에 올라있음을 인식의 기초로 한다.
세계 제2위의 국가 일본이 군사적으로 이웃나라의 일에 개입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도권을 꿈꾸는 일본이 멀지않아 넘버원의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냉전후 세계적인 조류인 군비축소 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는 날,아시아의 하늘에는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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