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평등 위배” “재정난 타개” 팽팽한 이견/학교·당국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눈치만/공청회 열어 여론 폭넓게 수렴… 「확실한 결단」 내려야교육부는 대학에서 대형입시 부정사건이 터질때마다 즉효를 내는 처방전이라도 되는양 「기여에 의한 입학제」 실시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사립대학 총장들도 모이기만 하면 몇몇을 빼고는 기여입학제에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난 정부가 이 제도를 선뜻 도입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아직까지 국민감정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는 「개인 또는 기업이 특정사립대학에 토지·건물·금전 기타 물질을 무상기부하거나 그 대학설립이나 발전에 비물질적으로 기여하는 등 현저한 공로가 인정될 경우,자녀 또는 자손이 당해 대학에 입학을 지원할때 그 대학이 정하는 적절한 기준에 의해 입학이 가능하도록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로 규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의명분아래 한국대학교육협의회,한국고등교육연구회 등 대학관련 단체가 끈질기게 공청회 세미나 등을 통해 백가쟁명식의 이론을 수렴,홍보하고 있으나 「돈=대학입학」이라는 일반국민의 선입관이 좀처럼 불식되지 않고 있다.
○입시때마다 논란
특히 대학사회에서 조차 기여입학제는 사실상 기부금 입학제로 상위권대학과 여타 대학간에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어 이 제도시행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여입학제 반대론자들은 국민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교육의 기회균등 이념에 위배되며 배금주의가 팽배해져 대학의 도덕적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한다.
기여입학제 실시를 주장하는 사립대학들도 이를 완벽하게 부인할 만큼 도덕적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상위권 대학의 이같은 미묘한 입장은 유명사립 K대가 기여입학제에 대한 「처신」과 「소신」이 다른 것에서 잘알 수 있다.
이 대학의 한 보직교수는 기여입학제 실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연세대 등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상위권 대학 보직교수들간의 모임에서는 『기여입학제가 사립대의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는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돈을 받고 입학증을 파는 기부금입학제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기여입학제를 옹호한다.
그러나 K대측은 기여입학제에 관한 공청회나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모임에서는 한발 후퇴,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내 놓고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K대의 한 보직교수는 『기여입학제를 목마르게 원하면서도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부 상위권 대학들의 입장은 마치 유엔총회에서 군소국가의 수적우세에 밀려 의사를 관철치 못하는 강대국꼴』이라고 비유했다.
기여입학제도는 지난 87년 8월 교육개혁심의회 교육발전 분과위원회가 그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이후 89년 전국대학 교무처장 협의회 연차총회 결의를 거쳐 해마다 교육부,청와대 등에 공식 건의돼 왔다.
지난해 유명대학들의 입시부정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기여입학제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으나 선거를 앞둔 민자당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유보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찬반 양론이 분분하지만 사실은 개념자체도 정립돼있지 못하다.
▲물질적 또는 정신적 기여의 범위 ▲기여자 자손에 대한 특례입학 적용범위 ▲기여시기와 입학시기와의 관계 ▲기여입학자수의 결정범위 등 어느 한가지도 합리적 기준이 세워져 있지 못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김형근 정책연구 부장은 지난해 12월 기여입학제 공청회에서 물질적 기여자의 범위는 ▲대학 설립 당시 기본재산의 3분의 1이상 무상출연한 경우 ▲연간 대학운영비의 2백분의 1이상에 해당하는 재산기부자 ▲유산의 대부분을 특정대학에 무조건 무상기부한 경우 등을 꼽았다.
연세대 이성호 학생처장은 같은 공청회에서 『기여입학제는 사회일반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은 뒤 시행돼야 한다』고 전제,『돈으로만 기여의 범위를 제한하게 되면 대학이 물질 황금만능주의를 부채질한다는 비난을 면키어렵게 될 것』이라며 『비재정적(정신적)기여도 악용될 소지가 많아 폭넓은 여론수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기여입학 대상자라도 일정수준 이상의 수학능력이 있어야하며 입학특혜는 ▲가산점 부여 ▲최저합격선을 기준으로한 입학혜택 ▲별도의 특별전형 방법 등을 제시했다.
고려대 교수협의회가 최근 회원교수 2백8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교수들이 기여입학제 실시에 대해 찬성하고 있으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최상치를 5.0점으로 환산할때 기여입학제에 대한 찬성의견은 평균 4.0으로 높게 나타났으나 제도 채택가능성은 3.4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상위권대 집중 우려
응답자들의 제언분포를 보면 「학교발전에 기여한 자의 후손에게 특혜를 주자」는 의견이 38.9%로 가장 많았고 「신중하게 시행하자」는 의견도 37.9%나 됐다.
또 「시급하므로 당장 실시하자」 「은밀하게 실행하자」는 의견도 각각 6.3%에 달했다.
이화여대 이승완 학생처장은 사견임을 전제,『기여입학제는 국민공감대가 없어 아직 시기상조』라며 『소수의 학생들로부터 받는 기부금 액수가 크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국민적 의혹과 교육의 평등성 손실이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안두순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부분 교수들이 기여입학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며 『현 교육제도 자체가 돈 있는 자에게 유리한데 이에 특혜를 더 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못박았다.
이재윤 중앙대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전국 2백60개 대학·전문대에 「기부금입학제를 반대하는 호소문」을 보낸데 이어 올해부터는 청와대에 기여금입학제 반대 「탄원서 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여금 입학제가 실시되면 사회적 기부금은 상위권 대학들이 독점해버려 대학간 서열이 굳어질 것이라는 나머지 대학의 우려도 심각하다.
고려대 이재창 기획처장은 이에 대해 『대학이 다같이 배고플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상위권 대학에서 기여금으로 재원이 확보되면 정부 보조금을 양보,타대학에도 혜택이 돌아게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성신여대 유제권 기획처장은 『기여입학제는 기부금 입학제를 분식시킨 것으로 주목적은 대동소이』라며 『이는 마치 공개입찰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범위등 기준 신중을
유 처장은 『공청회에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해외유학을 떠나 외화를 낭비하는 현실에서 기여입학제가 실시되면 외화를 절약할 수도 있다는 억지논리를 펴는사람도 있어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반대론을 무마키 위한 보완책으로 ▲기여를 한뒤 6∼10년이후에 기여도를 평가,입학 특혜를 줄 것 ▲해당학과 합격선의 70∼80% 이상의 성적을 취득할 때만 입학허용할 것 ▲기여입학의 범위는 총정원의 2∼5% 미만,과정원의 5∼10% 미만으로 한정할 것 ▲기여입학과 기여금을 관리키 위한 공기구를 설립하고 ▲각 대학의 기여금을 풀제운영할 것 등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대 이규석총장은 『기부금 입학제를 기여입학제로 명칭을 바꾸는 등 각종 개선방안이 잇달고 있지만 이는 도덕적 열세를 호도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며 『교육에 대한 획기적 투자없이 기여금입학을 성급히 도입하면 대학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아라고 말햇다.
이 총장은 『세계 어느나라도 기부금을 공식제도화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며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우리사회에서 금전이 개입된 입학심사는 대학의 새로운 갈등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가 심각한 사립대학의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떠오른 이상 정부와 대학과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접근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찬성/고질적 투자빈곤 해결 유일책… 활성화 빨리
기여입학제는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우리나라 실정에서 고질적인 사학의 재정난을 타개하고 대학교육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기여입학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시각은 「기여」의 의미를 「돈과 입학을 맞바꾸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다.
기여입학제란 기여자의 대학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공헌도를 수년간에 걸쳐 학교측이 엄정하게 평가한 뒤 입학지망자의 능력에 따라 입학에 상당부분의 혜택을 주려는 제도다. 물론 기여입학제를 통해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다른 신입생과 마찬가지로 졸업때까지 엄격한 학사관리가 따라야한다.
기여입학제가 교육기회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사립대학과 국립대학간에는 재정문제에 있어 이미 평등하지 못하고 차벌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학에 국립대 수준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기여입학제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기여입학제는 또 학교간 「경쟁논리」를 불어넣는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 외부 기부를 받으려면 학교측이 먼저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부상품」도 개발해야 한다.<박흥수 연세대 기획실장>박흥수>
◎반대/계층간 위화감 조성… 장기적으로 도움 못줘
기여입학제는 땀흘려 한글자라도 더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의 기본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제도다.
이같은 제도의 도입은 재정난 해소의 근본적인 대책은 물론 단기적 해소책조차 될 수 없다. 행정부측의 편의주의가 일부대학의 배금주의와 야합해 실시를 서두르고 있는 기여입학제를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켜 막기 위해 탄원서보내기 교부운동을 하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부동산·증권투기 등으로 일하는 미덕이 무너진 것과 일맥상통하는 「신종 교육투기」다. 우선 돈부터 끌어다 시설만 갖추면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발상은 학생들간의 이질감 심화로 새로운 갈등을 낳는다.
교육은 인간의 기초욕구이자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 돈이 있고 없고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기여입학제 도입으로 소수 대학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초기부터 큰 혼란과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계층상승의 유일한 문은 곧 대학인데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게 되면 사회갈등과 알력이 입시에서 집중표출되고 말 것이다.
정부는 부유층의 선심을 기대하기 보다는 교육예산을 GNP의 8%선으로 끌어 올리고 기업연구개발비중 20%까지는 대학에 우선투자하는 등 문제해결을 위한 정공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이재윤 중대 무역학과 교수>이재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 유승우·김철훈·고태성·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오대근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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