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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사지원 첫시련/조순 한국은행총재/대담 장명수편집국차장(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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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사지원 첫시련/조순 한국은행총재/대담 장명수편집국차장(초대석)

입력
1992.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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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혼란 우려 특융에 동의”/통안증권 등 발행 인플레 잡을터/중앙은 독립돼야 경제도 더 발전/장바구니 물가안정이 한은 임무… 시대흐름에 맞게 경제체질개선 서둘러야부총리 출신의 첫 한국은행 총재로 중앙은행의 자율권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속에 취임했던 조순 총재는 요즘 투신사에 대한 한은특융문제로 첫 시련을 겪고 있다. 정부·여당에 맞서 특융에 반대해온 그는 일부 투신의 환매사태가 확산될 경우 금융질서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주장을 꺾었는데 안정론자인 그가 왜 특융에 동의했으며,앞으로 어떻게 통화관리를 해나갈 것인지 들어본다.

▼한국은행의 총재는 주부들의 장바구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입니까.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든 물가안정이 경제의 기반이므로 중앙은행들은 돈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임금,수입원료 가격,계절적 요인,소비행태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길게 볼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량입니다. 중앙은행은 통화량 조절을 통해서 물가를 통제하게 되며,중앙은행의 총재란 장바구니 물가수호를 임무로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총재께서는 학자시절과 부총리시절에 안정론자,균형성장론자로 국민에게 알려졌는데,지금도 같은 입장입니까.

『통화가치의 안정없이는 경제가 잘 될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일시적으로 경제가 잘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물가가 안정돼야 규모있는 소비생활이 정착되고,규모있는 소비생활은 물가를 더 내리게 할 것입니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금융저축이 줄어들고 투기적 투자가 성행하여 돈의 흐름이 왜곡되고,경제가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앞으로도 안정론자로서 통화관리를 해나가겠습니다』

○비상조치 필요 판단

▼투신사에 대한 한은특융 문제로 이견이 팽팽할때,국민들은 「조순의 한은」이 첫 시험대에서 끝까지 버틸 것인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반대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은행이 특융에 반대한 것은 특융이외에도 투신정상화 방안이 있다고 생각했고,특융이 근본적인 증시부양책이 될 수 없으며,통화증발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등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런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투신사들의 경영악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한남투신의 환매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비상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사태를 방치할 경우 증권시장뿐 아니라 전 금융부문이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으므로 특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1년에 8천여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신에 특융을 해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일부 투신사의 환매사태가 확산되면 신용질서에 혼란이 일어나고,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체 국민경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조9천억원에 이르는 이번 특융이 인플레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가 될 것 같습니까.

『이번 특융으로 2조9천억원의 본원통화가 증가하게 되나 같은 금액의 통화안정증권을 투신사 신탁계정에서 인수토록 함으로써 통화증가분을 환수할 예정입니다. 또한 통안증권 발행에 따른 이자지급으로 추가적인 통화증발이 예상되지만,이에 대해서도 통안증권 발행 등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여 인플레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은행의 독립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임기중에 법개정을 추진하실 생각입니까.

『중앙은행의 독립은 어느 나라에서나 큰 관심의 대상입니다. 독립의 정도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독립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정치개입 불신 초래

인플레 진정의 필요성이 강할수록 통화관리가 중요해지고,그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이 더욱 강하게 요구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말은 통화가 정치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통화정책을 좌우할 경우 정치적인 이유로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여 통화정책의 기조가 흔들릴 위험이 있으며,이런 일이 거듭되면 경제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중앙은행이 독립하면 경제가 그만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며,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행이 법적으로 독립성을 가졌다면 이번 투신특융의 결과가 달라졌겠습니까.

『특융과 같은 발상은 원래 중앙은행의 임무와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러한 특융은 중앙은행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문제이며,그렇기 때문에 지난번 12·12 조치때와는 달리 국회의 동의를 얻기로 정부와 합의한 것입니다. 이번 특융의 본질이 한국은행의 독립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이 시점에서 특융으로 증권시장을 활성화시키려 한 것은 선거와 관련이 깊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화관리에서 정치의 영향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선거가 통화증발의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거로 인하여 통화의 유통속도가 빨라지면 같은 통화량이라도 물가에 더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통화관리자로서 앞으로 정치일정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나,지금까지 통화증가율 18.5%라는 목표가 잘 지켜지고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4월도 어려운 한달이었지만 잘 넘어왔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안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나도 통화가치 안정에 전력을 다할 각오입니다』

○선거바람막기 최선

▼6공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총재께서는 부총리로 6공 경제에 참여했던 책임이 있는데,어떻게 경제를 마무리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6공 정부는 86∼88년의 3저 현상으로 인한 거품경제를 물려받았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국민도 기업도 경제가 잘돼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나,경제가 내려갈 수 밖에 없는 많은 요인들이 쌓여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경제가 나빠진 책임을 6공의 「실정」에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으며,국민들은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냉정하게 지나간 몇해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빨리 인식하여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오늘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게된 원인입니다.

과거에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값싼 노동력이 풍부하고,권위주의 정부가 권력을 기울여 기업을 돕고,국제적으로 일방적인 수출드라이브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이점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대책을 세우고,노력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는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되나,무엇보다도 인플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보십니까.

『경제란 어느 나라에서나 항상 어려운 것입니다. 잘돼 나가다가도 어려움에 봉착하곤 하는 것이 경제입니다. 그렇게 튼튼해 보이던 일본경제와 독일경제도 오늘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항상 변화하는 여건속에서 체질개선은 하지 않고,그저 경제가 잘되기를 바라고만 있으면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일본의 70년대 이후 우리 못지않은 어려움을 여러번 겪었는데,그 어려움이 모두 약이 되었습니다. 50년대부터 20여년에 걸쳐 연 10%이상 성장해온 일본은 74년 오일쇼크때 성장률이 제로로 떨어졌으나,원가절감과 기술개발 등 피나는 노력으로 곧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85년 엔화 절상때도 수출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섰지만 다시 극복해냄으로써 일등국가의 자리를 굳혔던 것입니다.

시련은 약입니다. 특히 경제에서 시련은 늘 있는 것이므로 극복여부가 중요하지 시련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경제의 미래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의 저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기업인들은 우리나라 금리가 수출 경쟁국들에 비해 너무 높다고 불평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금리가 너무 높은 것은 사실이며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금리가 내려가려면 먼저 인플레가 없어져야 하고,경제구조가 개선되어 자금수요가 사라져야 합니다. 금리인하는 단순한 경제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실명제여건 미성숙

▼부총리시절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다가 좌절하셨는데,지금은 실명제를 실시할 여건이 성숙했다고 보십니까.

『그 당시엔 실명제를 사회정의 차원에서 정부가 의무감을 가지고 추진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실명제실시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나 이 시점에서는 아직도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중소기업 도산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어떤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중소기업의 도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한편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새로 일어나고 있으며,그런 와중에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기업들의 도산원인은 늘 「자금부족」으로 표현되고 있지만,그동안 기업들이 거품경제속에 스스로 감당못할 시설확장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등 자기능력 검토가 부족했다는 점도 큰 원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돼있어 자금 등이 대기업에 편중돼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비율을 높이고 정책금융을 마련하는 등 정부로서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긴축을 유지하더라도 중소기업 지원에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가 통일을 향해 가야한다는 입장에서 경제협력을 생각해야지 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득은 부자 나라들과의 교역에서 얻어야지 가난한 친척에게서 이익을 바라서야 되겠습니까.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있으나,사람만 많다고 금방 생산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적인 노동력이 되려면 조직과 훈련과 체제 적응노력이 있어야 하고,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약력

▲1928년 강원 명주출생 ▲서울대 상대졸업·미 버클리대학서 경제학박사 ▲미 뉴햄프셔대 교수 ▲서울대 교수(69∼88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88년 12월∼90년 3월) ▲한국은행 총재(92년 3월∼) ▲「화폐금융론」 「한국경제의 현실과 진로」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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