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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강야 파란 연속 “정치혐오”/13대 국회 영욕과 명암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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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강야 파란 연속 “정치혐오”/13대 국회 영욕과 명암 4년

입력
1992.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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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지자제·국감부활등 성과/여야 극한 대립 일관 날치기 얼룩/수서·뇌물외유등 의원 14명 구속 “역대 최다”▷13대국회 결산◁

민주화의 열망속에 지난 88년 5월 문을 연 13대 국회가 29일로 법정임기를 끝내고 30일부터는 14대 국회가 시작된다.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로 출범한 13대 국회는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3당 통합으로 「거여소야」 구도로 바뀌면서 미증유의 정치적 실험을 경험했다.

5공의 권위주의적 권력에 대항해 일어난 6·10 민주화투쟁은 「6·29선언」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4·26 총선에서 한때 「황금분할」이라 불리던 4당체제를 낳았다.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에서 거세게 불어닥친 민주화바람을 타고 평민 민주 공화 등 야3당은 개원초부터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독재권력의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다.

이에따라 13대 국회는 5공청산,악법 개폐작업과 더불어 국정감사 및 지방자치제를 부활시키는 등 나름대로 국민의 개혁열망을 충족시키며 의회정치를 상당수준까지 활성화 시켰다.

그러나 「야대의 위력」에 대한 반작용은 90년 1월 3당통합으로 이어졌고 정국은 인위적 개편에 의해 순식간에 기본구도가 바뀌었다.

「구국의 결단」을 합당의 명분으로 세운 민자당은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절대다수를 확보함으로써 정국의 「안정」을 가져왔을지는 모르지만 개혁의지는 크게 쇠퇴하고 말았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국을 주도하려한 민자당에 맞서 야당은 극한 대응으로 일관,13대 국회는 끝내 「날치기」 끝맺음하고 말았다.

13대 국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민의에 의한 여소야대가 하루아침에 거여소야로 변하면서 국민에게 정치적 냉소주의를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정계재편◁

13대 국회 출범당시 의석수는 여당인 민정당이 1백25석인데 비해 평민당 70석,민주당 59석,공화당 35석,한겨레당 1석,무소속 9석 등 야권은 무려 1백74석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13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서는 당초의 당적을 보유한 의원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13대 국회는 정계개편이란 엄청난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야대」에 밀려 정치적 무기력을 절감한 민정당의 적극적 주도로 90년 1월22일 선언된 3당통합,야권통합으로 이루어진 민주당,14대 총선과정에서 태어난 국민당과 신정당 등 개원당시의 각 정당은 모두 이름이 바뀌거나 탈바꿈했다.

이에따라 13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9일 현재 의석분포는 민자당 1백95석,민주당 63석,국민당 10석,신정당 5석,무소속 19석 등으로 크게 변모했다.

13대 국회는 4·26 총선에 따른 법원의 선거무효판결 등으로 영등포을과 동해시에서 재선거가 실시되는 등 불안한 가운데 출범했다. 이 바람에 홍희표의원은 다시 당선됐지만 김명섭의원은 의원직이 상실되고 대신 나웅배의원이 당선됐다.

김명섭의원을 포함,13대 국회에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사람은 모두 15명으로 이 가운데 강영훈 최창윤 이희일 손주환의원 등만이 입각 등을 이유로 의원직을 사퇴.

정호용의원은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야당의 요구에 의해 사퇴했고 김완태 김동영의원 등 2명은 임기중 작고했다.

▷청문회 정국◁

13대 국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의정활동은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와 5공청산을 주도한 청문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

88년 정기국회때부터 실시된 국정감사를 통해 여야의원들은 권위주의체제에 가려졌던 각종 대형 비리를 어느정도 파헤쳤고 이로인해 입법부의 위상이 상당부분 강화됐었다.

그러나 89년 국정감사는 특위정국과 맞물려 기대치에 못미쳤고 13대 후반기에 들어와선 의원들의 사전준비 미흡과 행정부의 불성실자세 등으로 「국정감사 무용론」까지 제기된게 사실.

13대 개원직후부터 시작된 각종 특위활동으로 이뤄진 청문회는 일해재단 설립·언론통폐합 등 5공비리 진상을 파헤치는데 성공을 거두었고 광주특위에선 「광주사태」를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정호용의원이 광주문제와 관련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내려와 국회증언을 한 것이 청문회 정국의 대단원이자 하이라이트였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국민정서상 전직 대통령을 국회 증언대에 내세운 것이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향후 정치발전과 전직 대통령 「예우관행」 차원에선 논란의 소지를 남기기도 했다.

▷입법활동◁

13대 국회는 양과 질의 양면에서 모두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양적인 면에서 13대 국회는 역대 국회사상 가장 많은 1천2백77건을 처리했다. 4년 동안의 접수안건 1천4백39건의 88.7%를 마무리지은 셈이다. 이는 11대의 6백98건,12대의 5백11건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이며 역대평균 6백53건의 약 2배에 해당한다.

처리의안중 법률안이 8백6건(9백38건 접수)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제헌국회이래 처음으로 의원입법(4백47건)이 정부입법(3백59건)보다 많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의원입법의 대부분이 정부에 의해 성안된뒤 의원들의 발의형식만 빌린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음으로 질적인 측면에서 13대 국회는 각종 법률에서 비민주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법률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관련,가장 관심을 모은 부분이 법률개폐 특위활동과 지자제관련 입법,국회의원윤리 규범제정 등 국회내부 정화활동이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거쳐 각종 독소조항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된 법률로는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사회안전법 사회보호법 정당법 집시법 경찰관 직무집행법 형법 등을 들 수 있다.

지방자치법 지방의회 의원선거법 등 지자제관련 법률은 야당의 등원거부라는 진통을 겪은뒤 나온 여야타협의 산물이었다.

이와함께 국회윤리위 설치,TV생중계 등 의정활동 공개원칙을 담은 국회법 개정도 13대 국회의 성과중 하나로 평가될만 하다.

하지만 이같은 과실에 비해 3당 합당후 여당이 주도한 단독국회와 잇단 「날치기」 등의 파행사태는 「절차적 민주주의」 원칙을 벗어난 오점으로 지적된다.

▷의원 구속사태◁

13대 국회에서는 의원들의 수난이 유난히 많아 구속의원수가 역대 최대인 14명에 이른다.

이들 비리의원들은 대부분 독직사건에 연루돼 있어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공안정국」의 공방에서 보듯 정치권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로 해석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13대에서 터진 사건중 가장 큰 것은 「수서사건」. 수서지구 조합주택건설과 관련한 한보의 뇌물공세에 쓰러진 의원으로 오용운 국회건설위원장 이태섭 김동주 이원배 김태식의원 등 5명이 구속됐다. 이중 김태식의원만이 무죄로 판명됐다.

이에앞서 불거져 나온 상공위 뇌물외유사건은 「비리」냐 「관행」이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재근 상공위원장 박진구 이돈만의원 등 3명의 구속으로 귀결됐다.

이밖에도 89년에는 서경원의원 밀입북사건이 돌출,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의 조사사태까지 이어졌다. 90년에는 박재규 이상옥 두 의원이 각각 뇌물수수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유기준의원이 광역의원 후보 공천과 관련한 금품수수로 사법처리됐다.

이와함께 서석재의원은 지난 89년 동해 재선거 후보매수사건으로,이학봉의원은 5공비리에 연루돼 각각 재판을 받았다. 이중 서 의원은 아직까지도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신재민기자>

□13대 주요일지

▲88·5·30=국회개원. 의장 김재순의원,부의장 김재광,노승환의원 선출

▲7·2=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 부결

▲10·5=국정감사 16년만에 부활 실시

▲11·4=5공특위 청문회 시작

▲11·18=광주특위 청문회 시작

▲89·3·9=집시법 개정안 등 개폐법률 처리

▲3·20=노태우대통령 중간평가 유보

▲4·21=서석재의원 동해시 재선거후보 매수사건으로 구속

▲8·19=나웅배후보 영등포을 재선거에서 당선

▲12·31=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증언

▲90·1·4=정호용의원 사퇴서 수리

▲2·9=민자당 공식출범

▲4·3=문희갑후보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당선

▲7·14=민자당,방송관계법 등 26개의안 변칙처리

▲7·23=야당의원 75명,의원직 사퇴서 제출

▲10·8=김대중 평민당총재 단식돌입

▲12·15=지자제관련 3개 법안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

▲91·2·11=상공위 뇌물외유 사건으로 이재근 박진구 이돈만의원 구속

▲2·16=수서사건으로 오용운 이원배 이태섭 김동주 김태식의원 구속

▲5·10=민자당 국가보안법·경찰법 등 개정안 단독 통과

▲9·10=통합야당 민주당 공식 출범

▲12·18=민자당 제주개발법 등 변칙처리,13대 국회 사실상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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