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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진입」 가능한가/김인준 서울대·경제학(목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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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진입」 가능한가/김인준 서울대·경제학(목요진단)

입력
199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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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MIT대의 더로 교수(Thurow)가 쓴 「머리와 머리」(Head to Head)라는 책이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속에서 미국,유럽 그리고 일본의 경쟁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그리고 미국은 이와 같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그 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한 대목은 1870년과 1988년,개인소득 상위 20개국을 비교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은 지난 1백년을 통해서 이들 상위 20개국에 속한 국가들의 명단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중 특기할만한 점은 1870년에 각각 11위와 20위를 점하고 있던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불구하고 공업화의 실패와 정치적 불안으로 20세기에 들어와 2류 국가로 전락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870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일본이 소득수준 3위를 기록하면서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1988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일본은 가난했지만 노일전쟁에서 승리할만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더로 교수가 지적했듯이 몇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먼저 선진경제 진입에 성공한다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 신흥공업국가들이나 개도국이 선진경제에 진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더로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네 마리 용이 선진국임을 결코 낙관하고 있지 않다. 선진 경제로 향하게 되면 임금수준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를 상쇄할만한 생산성의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증가를 꾀하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분야로 이동하면서 기술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기술보호주의 경향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자체기술개발 노력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세계경제가 블록화할 경우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시장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수출하던 재화는 결국 상대적으로 임금이 싼 중부·동부 유럽에서 생산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들 국가들의 주요 수출시장으로 남아있는 미국이 누적된 국제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수입을 줄이게 되면 이들 국가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미국,캐나다,멕시코간의 자유무역지대 형성도 이들 국가간의 수출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아시아 신흥공업국가들의 수출시장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과연 일본이 시장을 개방할 것인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 일본은 오히려 동남아시아를 새로운 산업기지화하면서 네 마리 용을 뒤쫓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더로 교수는 아태공동시장(Pacific Rim Common Market) 구성에도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공동시장을 구성할 경우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돼야 하는데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노동인구 유입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편 더로 교수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도 한국이 선진경제로 진입하는데 큰 장애요인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더로 교수의 분석에 귀를 기울여야겠지만 이를 듣고 우리 장래에 대해 비판적일 필요는 없다. 문제의 본질은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처방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경제 진입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공업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와 칠레와 같이 쉽게 경제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과 같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통산업에서의 공업화 성공이 결코 미래의 경쟁력 확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기술개발과 산업시설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한국은 지역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하고 기술·투자 등 생산측면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수출과 외교·안보차원에서 보면 미국과 또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신 국제경제 질서하에서 미국과 일본의 조화가 우리 국익을 위한 가장 큰 대외정책 현안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는 거품경제현상,물가상승,국제수지 악화,성장의 질 저하문제 등을 해소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안정과 과소비 억제에 모두 노력해야 한다. 안정기조를 유지함으로써 계속 부동산과 주택가격의 하락을 유도,거품경제를 제거하고 물가를 잡아야 한다. 경기과열과 과소비가 지난해 GNP의 3.3%에 이르는 국제수지 적자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개방에 대응하고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제제도 개혁에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치불안이 경제발전을 저해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치 지도자들은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이해 관계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는 슬기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도 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최근 필리핀이나 태국사태를 보면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그저 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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