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인위적 세력재편에 끝없는 앙금/샤미르 “보수파 불만무마” 강공작전/시리아도 “평화회담 무산의도” 강경중동지역에 또다시 전운이 짙게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기가 25일 남부 레바논내 회교 게릴라기지를 공습,4명이 사망하고 이에 대해 시리아는 「일전불사」를 경고하고 나섰다.
안보소식통들은 수백명의 시리아군이 이미 24일 이스라엘 동부 국경에 접한 베카계곡에 배치됐다고 전하고 있어 시리아의 결전의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부내 강경파로 알려져 있는 다비드 레비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이날 시리아가 남부 레바논내 무장회교단체인 헤즈볼라(신의당)의 대이스라엘 공격을 방조할 경우 시리아와의 「제한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간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따라 1만4천여명의 주민이 이미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이스라엘군 공습의 직접 발단은 헤즈볼라가 지난 19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남부 레바논군(SLA)의 한 초소를 공격,1명이 사망하고 4명이 포로로 붙잡힌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후 장거리포,탱크 등의 지원하에 7차례에 걸쳐 계속적으로 보복공습을 감행했다.
회교 과격 게릴라들의 이스라엘 공격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많은 중동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중동의 현대사에 있어 「하나의 흐름」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레바논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면서도 근본적으로 현재 이 지역에 최대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패권각축장이 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은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지전이 그러하듯 20세기초 그리고 양대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서방열강들의 인위적인 세력 재편과정에 그 원인이 있다.
역사적으로 레바논은 시리아의 영토였으며 「중동의 진주」로 불렸다. 그러나 1926년 당시 이 지역에서 영국과 함께 최대의 제국주의 세력이었던 프랑스군이 진주,신탁통치를 하면서 시리아의 「세력약화」를 위해 레바논을 분리시켜 기독교가 주도하는 자치 공화국을 세웠다.
이후 46년 이 상태로 레바논이 독립한데 이어 48년 5월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이 곳은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다. 시리아는 그동안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치 않았으며 동시에 줄곧 레바논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해왔다.
시리아는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등과 함께 48년 이스라엘 건국이래 70년초 중동전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이스라엘과 군사적 대결을 벌여왔다. 특히 76년 아랍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레바논에 진주한후 3만5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이스라엘 영토회복을 목표로 하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지원해왔다.
턱앞에 시리아군의 주둔으로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2년후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테러공격을 응징한다는 구실아래 레바논을 침공,남부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현재 당사국인 레바논은 물론 이 지역에 주둔중인 유엔평화유지군 조차도 「안전지대」를 인정치 않고 있다.
안전지대를 둘러싼 남부 레바논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간의 전투는 실질적으로 이들 세력을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대리전 성격을 띠어왔다.
남부 레바논군의 안토레이 라드 사령관은 25일 이 지역상황이 『극도로 위험하다』고 보고하면서 이란과 시리아의 무기가 헤즈볼라에 전달되는 것을 막아줄 것을 레바논 정부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회교게릴라 전사들을 무장해제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 공습이 단순한 보복공격이 아니라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중동평화회담을 무산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강요한다면 전쟁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극우보수파의 공세로 궁지에 몰린 샤미르 내각이 국내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대아랍 강경책을 사용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설령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시리아간 직접 대결로 비화되지 않더라도 근본적인 영토문제의 해결없이는 항구적인 중동평화가 정착될 수 없으며 중동은 「끝없는 보복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조상욱지자>조상욱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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