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선거전의 구경거리로만 여겨졌던 무소속의 로스 페로가 드디어 현직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타임지와 CNN이 미 전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지도 조사에서 페로는 33%(전 달은 21%),부시 28%(40%),민주당의 빌 클린턴은 24%(25%)로 지금껏 계속됐던 바닥에서 대역전극을 연출해냈다.자수성가한 억만장자에다 정당배경없이 정치에 뛰어든 것까지 닮았다해서 미국판 정주영으로 불리는 페로가 양당제가 탄탄히 뿌리내린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 같은 타임지 조사는 『누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무려 39%가 페로지칭(클린턴 25%,부시 16%)을 밝혀 페로상승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더구나 고질적 현안인 「경제사정을 호전시킬 사람」,「재정적자를 줄일 사람」,「정부의 정직성을 지킬 사람」이 누구겠는가하는 항목에서도 모두 1위,그에 대한 지지가 기성에 대한 반발만이 아닌 현상의 타파,개선에 대한 진지한 기대마저도 걸려 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가 가장 취약했던 분야는 외교수행능력으로 부시 52%,클린턴 18%에 비해 페로는 15%였다.
물론 미국대통령 선거사상 무소속이 선전한 예는 몇번 있으나 당선한 예는 없고 투표까지는 아직 5개월여가 남아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이것이 아직 「실감」까지는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LA타임즈가 지난주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페로돌풍이 일과성만이 아닌,기성정치권에 대해 불신과 염증,변화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지도에서 1위임은 물론 페로 지지의 주요 이유를 꼽는 가운데 27%가 「변화를 대표하기 때문에」,19%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16%가 「정당인이 아니기 때문에」,12%가 「다른 후보가 싫어서」로 무려 74%가 기성 정치혐오와 변화를 그 주요 동기로 들었다. 이것은 페로현상이 아직 실감은 못준다해도 공화·민주 양당에 어떤 형태든 타격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주며 두 당에 모두 이 메시지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하는 진지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기성정치 혐오증
지난달 이탈리아의 총선에서 집권 연정세력이 과반수에도 못미치게 참패한 것이나 그전 프랑스와 독일,벨기에 등에서 있은 지방선거에서의 집권당의 연속 참패,비록 보수당이 과반수는 이뤘다지만 승리라고 하기에는 찜찜한 영국의 경우 등 지금 지구촌에는 기성정치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변화의 요구가 하나의 조류처럼 흐르고 있다. 태국의 잠롱현상,필리핀의 산티아고현상도 결코 이런 조류와 무관하지 않다.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강한 염증,이들의 현실안주,부패·정체에 대한 불만이 참신한 돌파구,변화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냉전종식후 더 일반화됐다는 것이 그간 보도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85년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서 비롯된 세계사적 대변혁,새질서에 언급하면서 한 정치학자는 『미래의 세력균형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각 국가들의 정치역량이다. 그 나라의 총체적 정치역량에 따라 그 국가의 운명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자유로운 국민적 합의,안정된 제도,변화를 수용하는 지도력을 가진 나라만이 신세계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량시험을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다. 87년 12월 처음으로 민주화선거를 치른바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판이하다. 그때는 어떻게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정부를 「안정적」으로 출범시키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우리의 뜻에 맞는 정부를 갖느냐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2월은 우리 민주주의의 본시험격이다.
이미 중요 정당의 후보들은 결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7개월간 이들이 벌일 불꽃튀길 열전의 소모를 걱정하기도 하고 이 사회에 팽배해질 레임덕 현상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기야 모두 우려 안되는 일은 아니다. 정작 군사력대결아닌 경제력 대결의 세상에 와서 우리의 경제력·경쟁력은 점점 말씀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생결단의 우리 후보들이 이 7개월을 무사히 놔둘 것 같지도 않다.
○「개혁」 보여주길
그래서 한 가지 당부가 있다. 또 돈과 관권과 지역에 매달려 선거전을 치를 생각을 말아 달라는 것이다. 무슨 선거도 모르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변화,개혁에 대한 갈망,아니 표가 미국이나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철철넘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우리가 임기가 끝나가는 노 대통령에게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민주화라는 혁명적 변혁을 도입했으면서도 그에 걸맞는 개혁을 그의 정책,인사 심지어 스타일에서 마저 후속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는 12월의 대선의 투표지에서 우리의 개혁희구와 부응해주는 후보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아니면 염증과 혐오로 차선,차차선의 선택을 해야할 입장에 있을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후보의 선거전도,유권자의 시각도,선택의 기준도 점정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정직하게 접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겨울,그야말로 「이 길고긴 5월에서 12월까지」 진정한 개혁의 증험들을 우리 후보들에게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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