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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명목에 “습관성” 손벌림/뇌물관행(공직사회 이래도 되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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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명목에 “습관성” 손벌림/뇌물관행(공직사회 이래도 되나:3)

입력
1992.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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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모르느냐” 액수도 커져/별관련 없어도 「봉투」 요구/시달림에 지쳐 기업포기까지/청백리들 “풍토개선 시급” 개탄공직사회의 기강이 풀어지면서 부패와 부조리가 확산되고 있다.

각종 인허가업무와 관련된 상납,단속 무마비,급행료 등 곳곳에 배어있는 이른바 「봉투」 관행이 어제 오늘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지만 그 규모와 정도가 눈에 띄게 심해져 깨끗한 공직자와 일반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일부의 부패행위로 공직사회내의 위화감이 심화되고 사기가 저하되고 있어 음지부서와 청백리들 사이에서는 자체정화를 촉구하는 소리도 높다.

70년대 중반부터 중소기업을 운영해오고 있는 최모씨(52·서울 강남구)는 공직사회의 부패상을 비판하며 이러다가는 「봉투공화국」이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과거에는 뇌물수수나 촌지관행에 그런대로 최소한의 「룰」이 있었다. 대개 업무와 가장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관공서의 주무부서 1∼2곳과 「거래」를 하면 여타부서에서는 「관할권」을 인정해 주었고 관련부서에서도 실무담당자나 부서 책임자 1∼2명과만 유대를 맺고 있으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뇌물의 규모도 「납득할만한」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경우 업자들이 스스로의 약점을 은폐하고 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청한 공생관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같은 「룰」조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관청에 드나드는 업자들의 푸념이다.

거래하는 주무부서가 따로 없고 별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까지 「인사」를 요구하는가하면 관련부서의 직원 거의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관계를 맺어두지 않으면 어느 칼날에 다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때문에 대부분의 업계에서는 정부의 행정규제 강화나 단속 강화 등을 달가워하지 않게 됐다. 이를 정부의 국민생활 보호 의지로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뇌물단가의 상승으로 연결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모씨(39)는 최근 음주단속에 걸려 10만원을 내밀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단속 경찰관은 『요즘 어느 때인데 음주운전하면서 시세도 모르고 다니느냐』며 50만원을 요구했다가 김씨가 모공사 직원이라는 「약점」을 알아챈 뒤에는 천연스럽게 1백만원을 요구했다.

최근 금괴밀수사건에 개입했다가 검찰에 적발된 김포공항 경찰대소속 정인영경사(37) 사건은 공무원들의 금품수수 행위가 심각한 범죄적 양상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정 경사는 조사결과 이 곳에서 근무한 4년동안 재산이 20억원대로 늘어 업무와 관련된 비행이 엄청났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공직사회의 뇌물수수관행이 어느 정도로 뿌리깊게 만연돼 있는가는 이모씨(28)의 경험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원을 졸업한뒤 A도청 공무원연수원에서 영어강의를 했던 이씨는 최근 공무원 해외연수를 위한 영어강습과 시험과정에서 수강생인 40∼50대 공무원들이 『잘 봐달라』 『쉽게 합격시켜달라』며 돈봉투를 내미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 이씨는 『도대체 부패가 얼마나 일상화돼있으면 같은 공무원끼리 뇌물을 주고 받는가』라는 생각에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는 허탈감에 빠졌었다고 했다.

뇌물관행은 사소한 개인적 민원에서 기업활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산돼 있다. 『기업을 하고 싶어도 공무원들 손내미는 꼴 보기싫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원성이나 『한국에서는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해외언론의 비아냥거림은 우리사회의 뇌물관행이 대수술을 해야할 중증에 빠져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격무불구 『물』좋은 대민부서 인기/단속미끼 업주 「위협」도/간부들 가족까지 찾아와 「수금」/「절대」없으면 업무지연 등 뒤탈

유흥업소들은 일선기관 공무원들의 「봉」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모카페 주인 이모씨(42)는 『요즘에는 하도 손벌리는데가 많고 액수도 커져 아예 하루 매출액중 상당액을 별도로 떼어 놓는다』며 『업주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것을 「적금을 붓는다」는 말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어진 「적금」은 경찰서·세무서·보건소·소방서·동사무소 등 관할 공무원들을 챙기는데 쓰여진다.

서울 종로의 A업소 주인 김모씨(36)는 『요즘에는 관할 관공서 간부의 가족들이라는 사람들까지 찾아와 한번에 10∼20만원씩 받아간다』며 『대부분 확인하기 어렵지만 만약을 몰라 그냥 버리는 셈치고 주고 만다』고 말했다.

이런 풍토에서 단속이 제대로 될리 없다. 한떼 서슬퍼런 단속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심야영업소들이 청계천일대의 룸살롱과 종로 2·3가 일대,강남과 이태원일대 카페 등을 중심으로 급속히 「부활」하고 있다.

대민부서의 「물」이 좋아진 만큼 인기도 대단하다. 교통경찰관의 경우 격무와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가장 인기있는 부서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모지방경찰청에서 결원이된 고속도로 순찰대요원 2명을 충원하기 위해 모집공고를 내자 무려 1백명 이상이 지원하는 바람에 말썽이 날 것을 우려,모집을 연기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기업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은 『매달 돈을 뜯기는 것을 계산해보니 무려 53곳에 달하더라』며 스스로도 놀라웠다고 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5만∼10만원 꼴로 쥐어주었고 경우에 따라 50만∼1백만원도 주었다는 것이다.

부산 사상공단에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51)는 『공해방지시설을 풀가동한다해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데 수시로 단속 공무원들이 「위협」해대는 바람에 견딜 재간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결국 최근 자신의 공장을 다른사람에게 임대해주고 말았다.

봉제수출업을 하는 이모씨(45)는 『한번 수출하는데 찍히는 도장이 줄잡아 1백개는 넘을 것』이라며 『돈봉투없이는 도장들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고 보면 옳다』고까지 말했다.

이씨는 『제대로 「접대」를 하지 않았을 때의 고의 업무지연,흠집내기 등이 중소기업의 사업의욕을 떨어뜨리고 수출 실적을 저해하는 큰 원인중 하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수첩에는 관련공무원 수십명의 생일이 빼곡히 적혀 있다. 업무외에도 이런 날에는 최소한 봉투와 함께 꽃 한 다발이라도 보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이다.

항구에서 통관대리점을 하는 박모씨는 항만부조리에 대해 『봉투없이는 단 한가지 업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박이 입항할 때 당연히 승선해야 하는 검역소 직원은 교통비를 찔러주지 않으면 마냥 시간을 늦추고 세관직원은 까탈스럽게 트집을 잡는다. 대리점 개설이나 등록증 경신 등 인·허가 아닌 등록업무 때도 봉투를 건네지 않으면 서류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박씨는 『이런 식으로 하역을 지체하면 하루 배한척당 4천∼7천달러씩의 막대한 손해가나 어쩔 수 없이 주고 있지만 외국선원들 앞에서 공공연히 요구하는데는 낯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고 분개했다.

건축공사장의 금품거래가 심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공사신고비」에서 부터 시작해 각 공정진행 10% 때마다 중간검사비,소방필증비,마지막 준공검사비에 이르기까지 들어가는 돈이 총공사비의 5∼10%에 이르는게 보통이다.

한 건축업자는 『담당공무원이 「차 한잔이나 하자」고해 별 생각없이 차 값만 계산했다가 호된 곤욕을 치른적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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