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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엔 툭하면 “출장”팻말/일을 안한다(공직사회 이래도 되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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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엔 툭하면 “출장”팻말/일을 안한다(공직사회 이래도 되나:1)

입력
199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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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2∼3시간… 사우나… 낮잠/민원인 수십번씩 헛걸음/업무계획 재탕식 일쑤/일 챙기는 상사도 없어최근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된 회사원 윤모씨(36·전북 전주시)는 자가용차량 주소지 변경을 하려고 관할동사무소에 며칠동안 계속 들렀으나 『담당자가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몇차례 헛걸음 끝에 동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2층 동장실로 올라갔으나 동장은 부재중이었다.

동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러 옆다방에 들렀던 윤씨는 그곳에서 『관내순시중』이라는 동장이 친구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게됐다.

지난 21일 서울 B동 사무소에서는 민원창구직원중 절반만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옆창구 업무까지 함께 처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업무지연에 불만을 터뜨리는 주민들에게 한 직원은 『동네상황 살피느라 관내 나갔다』는 상투적인 「해명」을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21일 하오 서울지검 C지청의 사건과 창구 모습도 이와다를 것이 없었다. 민원인 8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하오 3시가 넘도록 점심시간에 나간 직원 2명이 돌아오지 않아 말단직원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창구 뒤쪽 사무실에는 직원 20명중 불과 4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썰렁한 느낌마저 주었다.

항의하는 민원인들에게 직원들은 『원래 검찰수사과 업무라는 것이 사무실에 앉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점잖게 되받았다. 옆 집행과 창구에서는 아예 한 직원이 서랍을 빼놓은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자세로 상담을 하고 있어 눈총을 받았다.

대구시에서도 일선구청의 실·국장급 간부들이 점심시간에 술을 마신 뒤 사우나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하오 3∼4시나 돼서야 사무실로 돌아오는가하면 아예 사무실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례가 올들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민원인인 찾을 경우 하급 직원들의 대답은 으레 『출장가셨다』이다.

지난 19일 하오 D구청에서는 모국장급 간부가 술에 취해 얼큰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어 빈축을 샀는가하면 하오 2시가 되도록 대부분의 과장급 간부들이 나타나지 않아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부산에서도 3·24총선 이후에는 일선 구청이나 경찰서에서 토요일에 일찌감치 업무를 끝낸 뒤 각계,반단위의 단체여행,천렵 등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주말 김해공항에선 낮시간부터 서울에 가족을 둔 고위공직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최근 인천시가 적발한 자동차세 장기체납자중에 현직공무원들이 다수 포함된 것도 직무기강이 어느 정도로 흐트러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 이 단속에서 시청산하 직원 2백15명이 적발됐으며 이중에는 지방세 징수업무를 직접 맡고 있는 직원들도 상당수 끼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처의 경우 올들어 공해 배출업소에 대한 단속실적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또 골프장 지하철 건설 등 환경영향평가대상사업을 추진할때 협의사항 이행여부에 대한 단속이나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않고 있다.

환경처는 지난해까지 분기별로 단속결과를 발표해 왔으나 올해에는 『아직 결과가 취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료공개조차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의 경우도 당초 올해로 예정됐던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문제,시립미술·박물관 건립문제 등 산적한 현안들의 처리가 지연 되고 있는 실정이며 올해말 개통 예정인 수도권 전철 분당선·과천선의 재원부담 문제도 중앙부처의 조정의지가 없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모부처의 한 간부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챙기는 사람도 없다. 그저 눈치나 보며 올해를 대충 넘기자는 것이 거의 모든 부처의 일반적인 분위기일 것』이라고 개탄했다.

최근 대구시는 경제활성화 대책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발표했으나 지난해 작성한 대책에 날짜만 바꿔놓은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샀다.

실·국별 업무계획이나 보고조차 무성의한 재탕식이 대부분이고 예산·추진실적·사업기간 등이 자료마다 다를만큼 행정의 난맥상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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