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천5백명설등 소문 난무/3천명 침묵시위… “수친다 축출” 맹세/일부 음식점에 “군인사절” 간판○상점들 하나둘 문 열어
○…푸미폰국왕의 사태중재 이튿날인 21일 시위대와 진압군간의 충돌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던 수도 방콕은 오래만에 평온을 되찾은 모습.
람캄헹대학을 비롯,시내 중심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던 군중들은 이날 상오 자진 해산했으며 이들과 대치했던 진압군도 나무그늘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등 큰 고비를 넘긴 기색이 역력.
또 오는 25일 개학하는 각급 학교를 제외한 관공서 등 공공기관이 이날부터 문을 열고 정상근무에 들어갔으며 상가지역도 하나 둘 문을 열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
그러나 방콕외교가에서는 이번사태를 축구경기에 비유할때 「하프타임」에 들어간 상태라며 아직 후반전이 남아있어 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경고.
○정확한 확인 어려워
○…태국사태가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언론·시민의 관심은 군의 발포로 과연 몇명이 사망했는가에 집중.
시민들사이에는 「1천5백명 사망」 등의 소문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
태국정부는 사망자 40명·부상자 6백6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를 믿는 시민은 거의 없는 실정. 태국 언론들도 사망자수를 1백50명∼수백명으로 보도.
태국 빈민층은 주민등록증이 없기때문에 화장했을 경우 정확한 사망자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파다.
○교통체증속 시위격려
○…3천여명의 시민들은 21일 검은 깃발·화환을 들고 시중심가를 가로지르며 시위희생자를 추모하는 침묵시위.
로열호텔에서 시작,민주기념관까지 행진한 침묵시위대로 격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했건만,운전자들은 오히려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모습. 주변에 경찰이나 군인의 모습은 보이지않고 경찰헬기만이 상공을 선회.
침묵시위군중이 민주기념관에 도착하자 한 시위지도자가 『여기 숭고한 죽음이 있다』며 『민주주의와 수친다퇴진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자』고 흐느끼며 호소.
한편 푸자칸지는 21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을 「꿈은 사리지고수친다는 총리로 건재」로 뽑고,수많은 시민들의 불만을 취합해 게재.
○최진요구 더욱 가열
○…야당,사회단체,시민들의 「수친다 퇴진요구」가 계속 가열되고 있어 사태악화 조짐이 상존.
찰라드 보라차트 전 의원은 『수친다가 퇴진하지 않으면 죽을때까지 단식하겠다』며 음식을 거부. 또 신문협회 및 출라롱콘대,타마사트대의 교수협의회가 수친다 사임과 발포책임자 처벌을 요구.
일부 음식점은 「군인사절」이라는 간판을 내걸기도.
○조기퇴진 권유설 논란
○…푸미폰국왕이 20일밤 수친다총리에게 개헌을 하기전이라도 이번 사태의 원만한 수습을 위해 물러나도록 권유했다는 발언의 사실여부를 놓고 논란.
이같은 논란은 TV에 방영된 수친다총리와 잠롱 전 방콕시장의 국왕알현장면에서는 국왕이 마이크를 사용하지않았기 때문에 녹음상태가 나빠 일어나고 있는 국왕이 직설적으로 사임을 종용치 않았을 것이라는게 중론.
그러나 방콕의 여론은 수친다총리의 사임은 분명하나 그 시기가 문제인것으로 집약되고 있는상태.
○피묻은 옷 그대로
○…태국 당국은 24일 사태수습을 위한 첫번째 조치로 3천여명의 시위가담자들을 석방.
이날 클롱프렘감옥에서 풀려난 1천여명의 시위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나 30대초반의 젊은이들로서 그중 일부는 피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있어 체포당시의 처절해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이들은 또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며 수친다총리가 사임,조국을 떠날때까지 가두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강경자세.
○국왕권위 새삼입증
○…푸미폰국왕은 이번 사태의 주역인 수친다총리와 잠롱 전 방콕시장은 물론,왕실 고문이자 정계원로격인 프렘과 타마삭 전 총리를 왕궁으로 불러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모색.
TV화면에 비친 수친다 총리와 잠롱 전 시장의 국왕알현 모습은 싸움질하다 들킨 학생이 선생님앞에 꿇어앉아 호된 꾸지람을 듣는 모습과 똑같아 국왕의 권위를 새삼 입증.<방콕=외신 연합>방콕=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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