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시위군중에 「영향력」 절대적/국왕,평소 잠롱과 관계 절친 주목군의 무차별 발포에도 불구,시위가 전국 13개 도시로 확산되는 가운데 20일 프렘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군부내 온건파가 수친다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세 과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4일째 유혈소요를 빚은 태국사태가 중대 전기를 맞고 있다.
반정시위는 방콕외에도 송크라,푸켓,수랏타니,창마이 등 지방곳곳에 확산되고 있다. 태국 신문들은 19일 전국적으로 1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보도했다. 특히 유혈진압의 실상이 방콕포스트,내이션지 등 신문보드를 통해 상세히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들이 군인들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하면서 민주화운동 세력에 동조하고 있다.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사태가 강경진압만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 군 최고사령관 출신인 수친다 신임총리가 이끄는 새 정권이 버텨내기 어려울 것같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고있다.
이번 사태 발전은 입헌군주국인 태국에서 국민의 신임이 절대적인 푸미폰 아둘야데즈 국왕의 입장에 다라 달라질 것으로 보여 모든 시선은 왕궁으로 쏠리고 있다. 태국정치에 있어 국왕은 지난 60여년동안 17차례나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정국혼란 때마다 정국의 흐름을 관망한 뒤 으레 권력투쟁에서 이기는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1932년 우익군부,진보적 학자,관료 등이 단합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제를 세운뒤 왕권은 갈수록 약화되어 왔다. 그래서 국왕은 쿠데타 발생때마다 자신의 입지를 보완하는 노력으로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국왕의 권력약화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왕에 대한 존경과 지지는 절대적이어서 국왕이 지지하지 않는 쿠데타는 거의 성공한 적이 없다.
따라서 국왕이 지난해 2월 수친다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와 그의 총리 취임을 승인했지만 민주화세력은 시위대 맨앞에 항상 국왕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왕이 자신들을 지지해 줄것을 호소한다.
국왕이 지난 18일 구속된 민주화운동의 기수 잠롱 스리무앙 전 방콕시장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큰 관심사가 되어오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잠롱이 단식할때 국민앞에 나서 평화와 안정을 호소한 후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수일째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20일 아침 처음으로 프랑스를 방문중인 마하차크리 공주가 TV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태로 많은 시민이 죽어 슬픔을 금할 수 없다. 더 이상 시민을 죽이지 말라. 더 이상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번 사태에 관한 왕가의 입장을 밝혔다.
정치 분석가들은 공주가 시위군중을 비난하지 않고 군인들의 강경진압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왕가가 반수친다 입장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주의 언급으로 민주화 진영의 사기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사태발전의 주요한 요인은 왕가와 양립하고 있는 군부내의 동향이다. 태국에서 군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실상 「정부」. 군은 정치뿐 아니라 자체 기업은행 방송 신문까지 운영하고 있다.
「출라콤클라오」로 불리는 태국 육사는 군부의 오랜 정치개입으로 정치지도자 양성기관처럼 되어있다. 국민들로부터 사임압력을 받고 있는 수친다 총리 등 현 집권 군부세력은 출라콤클라오 5기 출신.
사태가 심각해지자 수친다 총리와 육사동기로 현재 국가평화유지위원회(NPKC) 의장이며 공군 사령관인 카세트 원수가 수친다에 반기를 들고 역쿠데타를 일으키며 그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차세대 군 지도자로 알려진 육군 참모장 비로사엥사니트 장군 등 11∼12기 출신 가운데 온건파 군지도자들이 이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져 수친다측의 수명은 경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방콕=최해운특파원>방콕=최해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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