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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고서박물관」인가 「학생공부방」인가(대학을살리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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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고서박물관」인가 「학생공부방」인가(대학을살리자:12)

입력
1992.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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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외국학술지 태부족 “빛바랜 창고”/장서 확충·자료의 전산화 등 개선 시급/사서직도 빨리 전문화… 「단순 안내」아닌 「학문 길잡이역」 맡게 해야대학도서관은 흔히 인류 지성이 총집합된 「학문의 보고」,첨단 정보와 지식을 공급해주는 「대학의 심장부」라고 일컫는다.

1천만권을 넘어선 세계 최대의 장서량과 거미줄 같은 전산망을 자랑하는 미 하버드대학의 교수들은 『하버드대는 모든 대학건물이 일시에 파괴된다 하더라도 윈드너 도서관만 건재하면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은 어떤가. 교수와 학생들이 도서관 이용을 외면할 만큼 일반 독서실이나 빛바랜 자료 창고,「고서 박물관」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세계 유수의 대학도서관들은 정보화시대의 새물결을 놓칠세라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무서운 속도로 전산망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도서관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장서와 열람실 등 시설은 10년전 그대로이고 예산이 절대부족해 첨단이론 서적이나 신간전문도서,최근의 외국학술정보지 등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전국 대학도서관협의회 자료에 의하면 하버드대의 도서관 규모는 91년 12월 현재 장서수가 1천1백40만권,학술지는 10만2천종에 달하고 있다.

국내 최대규모라는 서울대는 미국의 장서 1백위권 대학인 라이스대,싱가포르대 수준인 장서 1백50만권,학술지 3천종에 불과하다.

서울대 수준을 보면 나머지 대학들의 사정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이용때 되레 짜증만

50개 국공립대를 모두 합쳐도 동경대 도서관의 6백30만권의 장서량에 못미치는 6백여만권에 불과하다.

특수대학의 경우 2만권도 못돼 웬만한 고교도서관보다 못한 곳도 있다.

물론 총량적인 장서 숫자만으로 도서관의 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수십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대학도서관도 정작 연구의 활력소가 될 최신 논문이나 외국 학술지,교수가 지정한 필독도서마저 찾아볼 수 없다면 도서관은 「심근경색증」에 걸려 대학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해마다 국내 석·박사학위 논문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총목록을 작성하는 기관은 국회도서관 뿐이다.

사립 K대 신문방송학과 김모교수는 3년전부터 대학도서관을 찾지 않는다.

2개의 외국 학술지 구독과 전공서적 구입으로 매달 20만원 정도를 할애하는 김 교수는 자료를 찾는데 번번이 실패한후 『도서관을 가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수들은 동료의 원서를 복사해 돌려보면서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김철수교수(헌법학)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필요한 책을 사모으다 보면 40∼50㎏이나돼 세관통관에 애를 먹는다』며 『교수가 언제까지 책보따리와 복사기에만 의존해야 하겠느냐』고 한숨지었다.

지난 90년 서울대 도서관이 각 단과대 학과장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교수들의 도서관 불신상태를 알 수 있다. 교수들의 76%는 필요한 자료의 도서관 소장 상태가 50% 이하라고 응답했고,도서관의 도서선정 협조요청에는 「도서구입을 요청해야 소용없다」(34%) 「문헌에 관한 정보자료조차 없다」(21%) 등의 이유로 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구입비 등 빈약한 예산은 좀처럼 늘지않아 도서관발전 계획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올해부터 국고보조금과 재벌그룹의 거액 출연으로 도서구입비를 기존의 14억원대에서 27억원으로 대폭 늘렸지만 하버드대(80억원) 동경대(70억원) 등과 비교하면 아직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은 연간 5억원의 예산중 3억5천만원을 외국 학술지 구입에 사용하나 교수들의 최소요구 수준인 4천종의 3분의 1수준인 1천4백여종에 그치고 있다.

◎좌석차지 싸움 치열

그러나 10여개 대학을 제외하고는 도서관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1백∼2백여권의 학술지 구입도 벅찬 것이 공통된 현실이다.

연세대 박순영교수(철학)는 『정부나 대학 당국의 인식결여로 비롯된 만성적 예산부족으로 대학도서관은 고사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기여금을 받아서라도 도서관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의 학문경쟁력 확보는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 사서직의 부족과 학생들의 왜곡된 이용관행도 대학도서관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은 최근호 1면 기획광고에서 「열람실 빈좌석 돌려 사용하기 운동」을 제안했다.

시험때만 되면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고 일부 학생들은 아예 며칠씩 가방 등을 놓고 다니며 좌석을 독점하기도 한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4천석의 중앙도서관 열람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공청회까지 개최한뒤 「좌석표 배분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앙대 권중달 도서관장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의 전환없이는 아무리 막대한 투자를 해도 도서관은 대학의 구색맞추기나 대형독서실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국 사립대 도서관협의회장 송민교수(국민대)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나 교수 추천원서 등을 어렵게 구비해 놓아도 찾는 학생들이 없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정된 예산으로 학문적 비중이 높은 서적을 구입하느냐,학생들이 선호하는 베스트셀러 등을 비치하느냐 망설이기도 한다』고 털어 놓았다.

서고에서 먼지에 쌓여가는 책들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을 서고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해 지적호기심을 유발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대가 지난 4월 열람방식을 개가식으로 바꾸자 도서대출량이 종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사서직의 전문화도 시급한 과제.

외국에서는 사서를 고도의 전문직으로 인정해 국가고시 등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공인자격을 취득하거나(영국),실질적으로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만 자격을 부여(미국)하고 있다. 소위 「주제별 전문 사서」가 전공분야의 학문 동향이나 서적의 특징을 꿰뚫어 학문의 아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제별 전문 사서는 커녕 자격증을 취득한 사서 확보도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대의 경우 1백여명의 사서직중 4년제 정규대학 출신의 자격증 소지자는 40여명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대 이형인사서관은 『사서는 사서(buying) 고생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대학원을 졸업한 1급 정사서의 월급이 50만원선으로 9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 현실에서 우수한 인재가 도서관에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대학의 도서관 전산화도 걸음마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이미 60년대부터 대학도서관 전산화에 착수,대학별로 도서 목록·대출·사서업무 등을 일괄할 수 있는 자동화시스템을 개발,범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정부도 적극 지원을

세계의 대학 전산망중 미국의 OCLC(On Line Computer Library Center)에는 41개국의 1만2천여개 대학·기관들이 가입돼 있다.

단행본 학술지 등 2천3백만개에 달하는 최신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루평균 8천여종의 연속 간행물이 추가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의 유수대학들이 이 전산망에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는 대학별 도서관 전산화도 일부 대학에서만 추진되고 있어 대학간 공동 전산망 구축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립대학교 도서관협의회 전산화위원장 윤택원씨는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이 도서관의 전산화를 대학의 운영을 결정할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만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각 대학의 전산화시스템이 각기 달라 호환성이 없는 등 공동전산망 구축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고려대 정우현도서관장은 『정보화시대의 대학도서관은 공동운영체』라며 『국제경쟁시대에 국내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정부와 대학당국이 도서관 전산화에 획기적으로 투자,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도서관 국제화 어떻게 돼가나/2001년까지 2백50만권 확보 목표/국내외대와 정보교류 컴퓨터작업 박차

서울대 도서관은 세계 유수의 교육·연구기관과 대등한 규모의 자료확보를 목표로 오는 2001년까지 장서수를 2백50만권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지난 90년 확정된 서울대 도서관 발전계획에 의하면 장서는 향후 10년동안 매년 8천∼1만권씩 확보해 2001년에는 현재(1백50여만권)보다 1백만원 정도 늘어난 2백50만권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술잡지는 현재 6천6백종에서 2만종으로 대폭 늘리기 위해 매년 1천∼1천5백종씩 추가로 구입할 계획이며 마이크로 자료도 매년 1만7천롤씩 구입해 2001년에는 25만롤까지 갖추기로 했다.

서울대는 또 국내외 대학간 정보교류 활성화를 위해 IBRD 차관 1천1백만달러로 도서관 전산화작업을 가속화 하고 있다.

먼저 서울대내 중앙도서관 및 본관,학과,연구소 등에 소장돼 있는 모든 자료를 종합데이터베이스에 넣어 이용자가 온라인 전산망을 통해 편리한 장소에서 원하는 자료를 검색·대출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 다음으로 서울대 도서관을 중심으로 국립대학 도서관의 공동테이터베이스 및 네트워크를 구성,연구활동에 필요한 학술정보를 신속하게 입수할 수 있는 「학술정보센터」로 만든다.

이같은 시스템이 구축되면 국내 대학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및 해외데이터베이스 도입 등에 있어서 중복투자를 피하고 공동목록을 작성함으로써 인력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대학의 연간 수입도서 2백30만권중 80% 이상은 똑같은 도서로 중복구입되고 있다.

서울대 도서관은 이와 함께 2001년까지 세계적 대학전산망에도 가입,국내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최신 자료 등 각종 정보를 입수할 예정이다.

서울대 도서관은 이를 위해 매년 10억원 상당의 국고보조와 지난해 5월 한국화약그룹에서 출연한 기금 2백50억원을 순수 도서구입과 전산화과정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궁극적으로 중앙도서관을 연구중심 도서관으로 중점 육성하되 교수·대학원생 이상의 전문 연구자의 연구활동을 위한 「연구도서관」과 학부생들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데 필수적인 기본 도서 및 교양도서를 구비한 「학습도서관」으로 분리할 방침이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철훈·고태성·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박종우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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