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EC위원회 현안대처 한계”/내달 정상회담때 집중거론/초대엔 통독주역 콜 총리 물망/각국 이해관계 불구 실현될듯【베를린=강병태특파원】 통합유럽을 대표하는 「유럽대통령」이 등장할 전망이다. 자크 들로르 EC(유럽공동체) 위원장은 다음달 리스본에서 열리는 EC 정상회담에서 「EC행정부」와 「유럽대통령」 창설이란 실로 혁명적 제안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들로르 위원장의 제안은 지난해 12월 마스트리히트 「유럽연합」 조약체결로 구체화된 통합EC의 공동외교안보정책 등의 결정과 수행에 필요한 권위와 기능을 갖는 조직을 창설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EC의 정책결정기구인 각료 위원회 및 집행기구인 EC위원회보다 상위권능을 갖는 행정부 조직을 창설하고 그 수반으로 대통령을 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회원국이 추천하는 인물중 유럽의회에서 선출하되 독자적으로 각료들을 선정해 행정부를 구성해 직선 유럽의회에 직접 책임을 지는 정책 결정 및 집행권능을 갖도록 한다는 것. 이와함께 현재의 정책결정기구인 각료위원회는 유럽의회의 상원으로 전환하고,대통령과 행정부 임기는 의회회기 5년의 절반인 2년반 이상으로 한다는 등의 세부계획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구상은 단순히 현 EC위원회의 권능확대차원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이는 EC위원회 관계자들의 배경설명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현재 EC각료위원회는 만장일치제를 택하고 있어 회원국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주요사안일수록 공동정책 결정에 난관을 겪고 있다. 이는 특히 최근 유고사태와 관련,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의 독립승인문제를 둘러싼 회원국간 갈등과 이로 인한 공동대응 실패에서 여실히 드러났었다.
EC는 각료위원회에 회원국들이 6개월씩 윤번제로 맡는 의장국제도를 두고 현안논의를 주도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의사통합기능이 없고 현 의장국 포르투갈 등과 같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밖에 전임 및 차기의장국이 의장국과 함께 주요현안조정을 맡게 돼 있는 이른바 「트로이카」협의체도 「3중의견 충돌」제로 불릴 정도다.
이같은 정책결정구조의 취약함을 보완키 위해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 각료회의의 주요사안에 대한 다수결제 등이 채택됐으나,신속하고 실질적인 공동정책 결정에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었다. 특히 빠르면 96년 경제화폐 통합이 단행되고 10년내 회원국이 18개국 이상으로 확대될 상황에서 유효한 정책결정 및 집행기구의 필요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유럽대통령」은 통합EC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권능과 국제적 위상을 갖는 존재로 구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들로르 위원장은 초대 「유럽대통령」으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이은 유럽통합 노력의 주역이자 통일독일 총리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을 갖고 있는 콜 총리를 최적임자로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EC주변에서 『콜 총리가 94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EC 위원장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나온 것도 이 「유럽대통령」구상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통일의 위업을 이룬 콜 총리는 향후 10년간은 계속될 골치아픈 동독 재건작업을 계속 총리로서 떠맡아 자칫 기존의 위업을 훼손하는 것보다는 유럽통합 완성이란 또다른 역사적 업적을 보탤 수 있는 EC위원장을 택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주장이다. 「유럽대통령」 구상은 이같은 관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90년부터 EC 위원장을 맡고 있는 들로르 위원장은 마지막 임기가 끝나는 오는 94년 미테랑의 뒤를 이어 프랑스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어 EC 위원장 후임이 누가 될지가 큰 관심사였다.
당초에는 스페인의 곤잘레스 총리 등이 유력했으나 마스트리히트회담후에는 네덜란드의 루버스 총리가 새로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루버스 총리는 안보정책 등에서 영국 미국에 지나치게 가까운 「대서양주의자」이고 통합유럽을 대표하기엔 중량이 모자란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콜 총리가 물망에 오르자 다른 후보들은 격이 처지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콜 총리외에는 곧 사임할 겐셔 독일 외무장관이 물망에 올랐고 들로르 현 위원장도 94년 대통령 꿈이 무산되면 유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이다 .
물론 「유럽대통령」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장애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통합 자체에 소극적인 영국은 물론 프랑스와 여러 소국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도 EC를 주도하는 독일의 콜 총리를 제1후보로 예정한 「유럽대통령」을 선뜻 받아들일리 없다.
그러나 이 「유럽대통령」 구상은 그 자체로 유럽통합작업의 현주소를 일러주고 있고 통합진전과 함께 어떤 형태로든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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