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공판」이란 말이 요사이 무슨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씁쓸하고 한심스런 일이다. 법과 정의를 판가름하는 재판 및 수사의 권위와 공정성을 국민된 도리에 뉘라서 얕잡아 불러보고 싶겠는가. 하지만 뻔한 법리와 사리문제를 놓고서도 예사로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졸속과 눈감기로만 흐르니 그밖에 달리 표현할 길도 없다 하겠다. 민심이 천심이라는데,세간의 「번개공판」이란 빗댐을 우리 사법부·검찰당국·특수기관 및 여당정치권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진정 묻고 싶다.왜 번개공판 소리가 나왔는지는 그들 당국은 물론이고 시중의 삼척동자도 다 안다. 안기부원 흑색선전물 투입사건을 수사한다면서 시간만 끌더니 검찰은 압력에 눌렸는지 배후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채 구속된 4명만을 기소했었다. 또 사법부는 이 사건을 넘겨받아 재판하면서 첫 공판에서 배후관련 질문하나없이 눈딱감고 30분만에 구형절차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사과정에서는 현실적 애로와 수사기관 사기문제를 감히 변명거리로 삼았고,재판에서는 불고불리의 원칙을 들먹였다고 한다. 그런 날치기 수사와 재판을 국민들이 마음으로 수긍하겠는가. 안기부라는 3공이래의 권부가 민주화된 6공에서 마저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그런 사태가 빚어지나에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래서 「번개공판」이란 유행어도 생겨난게 아니던가.
그런데 또 번개공판이 빚어졌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이번에도 역시 총선때 정국 요란한 반향을 일으켰던 한맥회 사건의 첫 공판이 안기부원 사건 공판때처럼 꼭 30분만에 일사천리로 구형절차를 끝낸 버린 것이다. 이번 공판역시 앞서의 안기부 사건처럼 집권 여당의 불법선거운동 간여실상이 과연 밝혀질지에 관심이 모아졌었는데,역시 이 부분이나 대학생 불법동원구조·과정·금품액수 등에 대해서는 질문하나 없었다고 하니 사정을 알만하다.
이같은 잇단 「번개공판」소동을 보면서 몇가지 고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더이상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를 온전히 이끌고 기강도 세우려면 법앞에 성역이 있을 수 없는게 상식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막중한 국가소추권과 사법권을 행사하면서 안기부라고 봐주고,정부·여당이라고 빼줘서 얻을 수 있는게 뭔가를 묻고 싶다. 국민들이 앞질러 속셈을 알아차린 마당인데 그런식의 공판을 일삼아 얻을 것은 불신·민심 이탈과 국력손실 밖에 없게 된다. 지금이라도 큰 뒷탈을 막을 생각이 있다면 형식을 떠나 계속 진상을 파헤치고 엄정히 단죄해야 한다. 그동안의 번개과정에 대한 문책도 마땅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결국 국민을 얕잡아 보는듯한 사법처리 방식은 이제 더이상 없어야겠다. 국가기관 권위실추와 창피스런 현실에 대한 국민적 실망밖에 남는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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