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1세 밀로반 질라스는 과거 티토밑에서 유고의 부통령을 지냈던 인물.질라스는 1969년에 저술한 「불완전한 사회새로운 게급을 넘어서」란 책에서 『장차 마르크스·레닌의 이데올로기는 자체 모순에 의해 사멸할 것이며 그때 소련 연방은 민족·각 공화국 단위로 분열 해체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질라스외에도 많은 구미의 소련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소련 공산체제가 빠르면 금세기안에 중대위기에 직면하여 연방은 핵분열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진단해왔다.
사실 80년대 들어서면서 거대한 붉은 소련제국은 경제파탄으로 균열이 시작됐고 85년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정책도 소련체제의 붕괴를 막기위한 변신의 몸부림이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88서울올림픽 직전 6공 정부는 7·7특별선언으로 야심에 찬 북방정책의 기치를 들고 헝가리와 소련에 수교 타진의 밀사를 보내는 법석을 피웠으나 그러지 않아도 당시 그들 국가들이 먼저 한국에 우호의 손길을 내밀 것은 시간문제였다는게 독 불 오 등에 주재하는 우리 외교관들의 얘기다.
정부가 건국이래 꿈도 꾸지 못했던 한소수교를 타결지어 모스크바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한 것은 큰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고,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소정상의 대화를 가능케하고 또 노태우대통령의 방소 등은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려는 소련측의 절박한 형편 때문이었다. 정부는 모스크바를 통한 평양 접근이라는 전략하에 유엔 동시가입 대북 무기공여금지 대남호전자세 완화 등에 힘을 써줄 것을 기대했으나 이때쯤 소련의 영향력은 무력해진 뒤였다.
아무튼 노 대통령이 소련을 다녀온지 한달만인 작년 1월 정부가 소련에 30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키로 결정하자 전 세계는 한결같이 놀라워했다. 동독을 흡수한 대가로 비용을 내는 서독외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련에 선뜻 거액을 투척키로 한 통 큰 한국정부의 결단에 입을 벌렸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일 등은 소련체제의 붕괴와 혼란 그리고 각 공화국의 독립 등이 완전히 끝나서 정돈되기 전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단 한푼도 줄 수 없다는 기본방침을 갖고 사태를 주시해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금차관 10억달러,원료 및 소비재 수출용 전대차관 15억달러,플랜트 연불 수출용 차관 5억달러 등 모두 30억달러는 공짜가 아니라 엄연히 일정한 이자조건 아래 빌려주는 것이다. 또 이에관련한 경제협력 협정을 통해 우리측은 어업권을 확보하고 시베리아 자원개발에 참여하는 등 그 나름대로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일부 참모들의 근시안적인 단견,30억달러 대소차관 결정으로 전통우방이자,우리 수출의 주대상국인 미국으로부터 『미국서 번 달러를 소련에 빌려준다』는 불쾌감만 안겨주어 이에따른 소리없는 파장,즉 대한 경제압력은 아직까지 계속되지 않는가. 30억달러중 현재까지 지급한 것은 현금 10억달러와 물품으로 준 전대차관 4억7천만달러 등 모두 14억7천만달러. 지난 1년간 정부가 믿고 준 소련은 어떻게 변했는가. 쿠데타 실패,고르바초프의 실각,각 공화국의 독립 등 엄청나게 변모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안 정부가 러시아공화국에 완전한 채무인계를 약속해야만 나머지도 줄 수 있다고 경계를 하고 있고 형편이 어려운 러시아는 무조건 잔여액의 조속제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국민들을 아연케하는 것은 고르바초프 실각전에 건네준 현금차관 10억달러가 증발되어 차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소련체제의 붕괴를 가져온 고위 당료들의 공금착복해외 도피라는 작태에제물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넘어 둑이 무너진 저수지에 물을 부은 것이 아닌가. 북방정책 초기에 소위 밀사행각을 무용담으로 바꿔 공개한 것도 그렇지만 한치앞 국제정세 변화를 읽지 못하고 관계 부처를 따돌린채 차관공여를 결정케 한 권부의 핵심참모들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15억달러,1조원이 넘는 돈이 누구돈인가. 국민은 결코 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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