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자리를 겨냥하는 인사들이 여야 한결같이 「지역감정 해소」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남북통일에 앞서 동서화합부터 다져 놓아야 할 필요성 때문에 지역 편가르기 문제는 경제재건과 함께 다음정권 최대의 과제가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구나 경우에 따라 이번 대선은 지역싸움이 최대의 고비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분론이나 당위론은 있으나 요즘 유행어인 가시적,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두 김씨는 스스로가 해소의 주역이 되겠다는 결의를 과시하는 선에서 머물러 있고 다른 인사들은 두 김씨를 배제시키는 일이 지역감정 해소의 시작인 것 같이 주장하고 있는 정도이다. 87년 대선때와 92년 대선때와의 사이에는 분명하게 지역감정의 차이에 관한 결정적인 변화가 있다. 그런데도 왜 여·야 정치인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미처 그 변화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아니면 노심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여기에서 우리는 TK출신이 배제된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의 의의를 다시한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첫째의미는 잘 알려진대로 당내 민주주의의 경험이 전무했던 집권당이 사상처음으로 민주경선을 치르게 됐다는 점이다. 현재 선거전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채 치졸하고 유치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경선이 그나마 있다는 것은 아예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 분명하다. 둘째의의는 예비역 4성장군 출신의 대통령 세사람이 31년간 펼쳐온 세칭 군사정권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군사문화의 시대가 가고 진정한 문민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민주당 김대중대표의 지적은 그 점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국민이 직접 뽑아 사실상 문민성을 확보한 노태우대통령을 군부시대에 포함시켜야 하느냐 마느냐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6공의 과도기성을 감안하면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6공은 87년까지 이 나라의 정치를 왜곡 변질시켜온 독재체제를 단기간에 민주체제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진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비민주구조를 충분히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인 과도기였다. 이제 그 과도기가 끝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단계 더 높여갈 수 있는 계기를 만난 셈이 되는 것이다.
○「TK퇴조」 변화계기
셋째 의의는 지역감정을 악화시킨 주원인인 TK세력의 독주시대도 함께 마감되리라는 전망이다. 그것은 망국현상인 지역감정 해소의 물꼬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주의있고 예민해야 할 정계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역감정과 TK세력의 등장은 같은 뿌리를 지녔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간에 3공이 장기집권을 기도하면서 생긴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같다. 박정희대통령 추종세력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영·호남 지역감정에 불을 질렀고,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상도 출신을 중용했다. 박 대통령의 사거로 왜곡부분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었으나 전두환장군의 등장으로 오히려 악화되고 심화되기에 이르른다. 5공은 3공의 동서분리 현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광주사태까지 빚게 되었고 경상도를 다시 남북으로 가르는 지역분할 상태로 치닫게 되었다. 6공은 그러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상당히 노력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6공은 5공때보다도 더 인재등용에서 폐쇄성을 보여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정의 운신폭을 좁혔다. TK세력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전국적인 반TK무드를 유발시키는 자충수를 둔 셈이 되었다. 6공에 들어와 완전하게 구축된 TK 패권구도가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긍정적인 면도 많겠지만 부정적인 것폐해가 심각했다는게 국민여론이다. 특히 TK를 제외한 대다수 지도계층이나 여론주도 계층에서의 소외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은 지역감정의 골을 깊고 넓게 확산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따라서 막강했던 TK시대가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권력과 특혜의 특정지역 독과점 현상이 더이상 계속 될 수 없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본격적으로 완화,해소시키고 지역균형을 위해 모두가 노력할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편파인사 등 극복을
그와 관련해 우리는 민자당 경선의 노심이 아니라 지역감정 현안에 대한 노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지역감정의 역기능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그 문제의 해소에 관해서도 누구보다도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이다.
이미 노 대통령은 대권구도에서 TK세력을 배제하는 결단을 내렸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강한 도전을 적정선에서 견제,무마했으며 핵심포스트에서 후퇴시키는 포석을 썼다. 남은 임기중 그같은 흐름은 계속될 듯하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TK독주에 의한 지역감정 촉발의 정리없이 안정적인 민주발전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또 그것이 6·29선언의 최종마무리 수순이어야 한다는 점을 성찰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편가르기의 극복은 말은 쉬워도 실행이 어렵다. 우선 장기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진행된 크고 작은 불공정·편파인사와 지역간 계층간의 특혜편중 시비 등을 시정키 위해서는 광범위하고 공정한 실태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TK공백을 메울 새 인사나 정책이 새로운 지역패권주의의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TK라고 해서 유능한 인재들이 보복받아서도 안된다. 해소작업은 힘들고 긴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지금쯤 대권후보자들 손에 두툼한 지역감정 해소백서가 쥐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백서의 필요성을 깨달은 정치지도자조차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대통령이 된 뒤에 시작하면 이미 늦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요즈음은 취임 몇개월만에 평가가 나버리는 스피드 정치의 시대가 아니던가.<본사주필>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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