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7월 하순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열렸다. 곧 실시될 제2대 지방의회 의원선거를 겨냥하여 자유당 정권의 강압정책에 맞서 전국적인 옥외집회로 대정부 공격과 야당붐을 일으키는 전략을 장시간 숙의했다. 회의 막바지에 이에따른 지원 경비정치자금건에 이르자 참석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을 쳐다봤다.잠시 침묵이 흐른뒤 호상의 조 박사가 『내가 융통해 보리라』고 하자 분위기는 곧 부드러워졌다.
조 박사는 귀가 즉시 신임하는 참모를 불러 자금주선을 지시,호소했고 참모는 습관대로 당국의 눈을 피해 동대문 시장의 상인들과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통사정하며 차금행각을 벌였다.
이 땅의 역대 야당들은 참으로 가난했다. 명색이 공당이라면 당원들의 당비와 지지자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나 그런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자금조달을 도맡았던 조 박사와 유진산 신민당수가 사후 개인명의의 예금통장이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집은 당비에 쓰느라 2∼3중으로 은행에 저당잡힌 것으로 드러난 것은 아직도 화제로 남아있다.
조·유 두 당수는 온갖 구설수를 겪었지만 철저한 「프로당인」 「프로공인」답게 사리는 일체 외면했던 것이다.
어쨌든 당살림의 형편이 이 지경이니 야당의 자금사정은 지극히 음성적이고 엄비가 관례로 되어오고 있다. 3공∼5·6공까지 오면서 야당에 국고보조금과 중앙선관위를 통한 기탁금,전국구 후보의 헌금수입,그리고 후원회제도도 생겼으나 자금사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부정부패의 근원이 정치의 부패에서 연유한다면 정치부패는 부정한 정치자금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자금이 바르게 조달되고 또 분명하게 쓰일 때 정치풍토는 맑고 깨끗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때문에 구미 선진국들이 정치자금의 조달과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되 자금 내역을 국민에게 완벽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치자금에 관한 법과 제도는 선진국을 뺨치게 더 잘되어 있다. 하지만 운영은 1950년대 수준을 못넘고 있다. 여전한 음성화와 뒷거래 그리고 두꺼운 장막에 싸여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자금법(24조)은 정당이 해마다 수입·지출에 관한 회계보고서를 중앙선관위에 제출케 하고 있으나 이를 사실로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비밀관례를 깨고 제1야당인 민주당이 14대 총선과 관련한 수입과 지출내용을 공개한 것은 하나의 「신선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전국구 후보의 특별당비(헌금) 2백10억원 등 총 2백49억원을 모았고 이중에서 각지구 후보 지원금 1백98억원 등 2백33억원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의 진실성 정확성은 차치하고 이처럼 수지내역을 밝힌 것은 크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적지않은 아쉬움과 궁금증을 갖고 있다. 수입부분은 헌금 국고보조금 선관위 비지정기탁금 예금이자 수입만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전국의 대소업체나 기업인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선관위를 거치지 않고 전한 자금이나 단돈 1백원도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국민들의 관심사중의 하나인 전국구 후보들의 헌금내역과 함께 순위별 헌금내용을 밝혔어야 했으며 후보공천과 관련하여 당지도부가 만에 하나 커미션(수고료)을 받은 것이 없었는가도 의문인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궁금증은 남지만 어쨌든 민주당의 공개결정은 반가운 일로서 아예 매년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살림내용을 밝힐 것을 권유하고자 한다.
아울러 필자는 이번 민주당의 공개를 계기로 집권당인 민자당과 국민당도 공개할 것을 기대하고자 한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대변하는 공당이라면 주저할 것이 없을 것이다.
건강한 정당운영과 깨끗한 정치는 결코 말로만 이뤄지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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