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도 안된 사건의 구형량만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는지 모른다.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하고 더이상의 변론이나 유죄입증을 위한 증거가 필요없는 상황에서 재판이 일찍 끝난 것을 시비하는 것 역시 법률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무식한 짓일 수 있겠다.
징역 1년이 구형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형사사건 재판이 10∼20분만에 결심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일 열린 안기부 직원들의 흑색 선전물 살포사건 첫 공판이자 결심 공판은 이 모든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예를 찾아보기 힘든 졸속재판이었다.
검찰수사에서 「친구부탁」이라는 모호한 동기외에는 전혀 밝혀진 것이 없는 이 사건의 첫 공판은 불과 15분만에 사실심리가 종결됐다. 선고를 뺀 모든 1심 재판절차가 25분만에 마무리됐으며 검찰 구형량은 집행유예선고가 예상되는 징역 2∼1년씩 이었다.
검찰·변호인·재판부 어느 누구하나 배후나 동기를 신문하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장에 적힌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사무관 한기용피고인(37) 등 4명에 대한 범행사실만 단 3분만에 확인하는 것으로 직접 신문을 대신했고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은 당연히 피고인들의 공적사항이나 딱한 개인사정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피고인들은 재판부가 『왜 친구부탁에 선뜻 용의했는가』하고 묻자 『크게 신세를 지고 있었고 평소 공분을 느끼로 있던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소속기관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할 피고인들이 직무를 이탈한채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은 국민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음지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으로 치밀한 계획하에 배후를 은폐하고 범행을 축소하는 등 개전의 정이 전혀 없어 엄벌이 선고될 것을 기대하며…』. 검찰의 논고문은 추상같으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끝내 공허한 미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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