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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만 열면 계실 것같아…”/김현희 북 부모에 눈물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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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만 열면 계실 것같아…”/김현희 북 부모에 눈물로 쓴 편지

입력
199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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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버이날 맞아 본지에 보내와/“카네이션도 못달아 드리고…/통일의 날까지 건강하세요”KAL 858편기 폭파범 김현희(30)가 8일 아버이날을 맞아 북한의 부모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김현희는 이편지에 부모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하는 슬픔과 가족들에 대한 걱정,1백15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데 대한 죄의식,통일에의 소망등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편지 전문.

어머니,아버지!

얼마만에 마음놓고 불러보는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주대하고 불러보면 여한이 없으련만 그렇게 못하니 지상을 통해서라도 불러봅니다. 오늘은 이곳에 와서 다섯번째 맞는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베푼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 5월8일을 어버이날로 정했다 합니다.

이곳 어버이들은 누구든지 자식들로부터 받은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닙니다. 돌아가신 어버이께는 흰 카네이션을 바치고 살아계시는 부모님께는 빨간 카네이션을 바친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지척에 두고 빨간 카네이션 한송이 달아드리지 못하는 제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버이날을 맞을 때마다 부모님께 효도한번 못해보고 오히려 저로 인해서 고통받으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는것 같습니다.

며칠전에는 어머니,아버지를 꿈에서 뵈었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반가움보다 죄의식 때문에 마음이 몹시 착찹했었습니다. 꿈에서도 저는 너무 반가워 어머니 아버지께 안기려고 달려갔는데 어머니 아버지는 마치 목석같이 가만히 계셨습니다. 저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섭섭한 마음으로 두분의 표정을 돌이켜보니 그 표정은 바로 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꿈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제가 어떠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결코 저를 미워하실 분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꿈을 꾼 것은 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죄의식 때문이겠지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거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나 또는 외출했다가 돌아와 아무생각없이 방문을 열때면 어머니 아버지가 방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줄 것 같은 착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특히 잠을 자다가 새벽녘에 잠이 문득 깨어 눈을 떴을 때는 제가 누운 곳이 평양 우리집인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 곁에 두분이 계실 수 없는 곳임을 깨닫는 순간 저는 소리죽여 울음을 터뜨립니다.

어머니,아버지 정말 보고싶습니다. 그리고 현수,현옥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또 외할머니와 외가댁 식구는 무고하신지,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지금 서울에서는 북쪽 대표들이 와서 남북회담이 열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극적으로 합의되었다는 소식에 모두들 기뻐하고 있습니다. 저역시 기쁜 소식이지만 마음은 점점 더 우울할 뿐입니다. 저의 부모 형제가 분명 북에 있지만 북에서는 저의 교향방문 신청을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 뻔하고 또 제 자신도 1백15명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죄인의 몸으로 어머니 아버지를 만난다는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만나고 싶고 보고싶은 마음은 한이 없습니다.

어머니,아버지!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이렇게 영원히 남북으로 갈라놓은채 내버려두지는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또한 세계정세는 우리의 통일의 날이 멀지않았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그날이 오면 그때는 저도 어머니 아버지 가슴에 빨갛고 싱싱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렵니다. 부디 그날까지 몸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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