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7백만평 매물 가격안정 물꼬터/재벌견제민심수습 부수효과6공 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큰 획을 그은 「5·8 부동산 특별조치」가 시행된지 2주년이 됐다. 50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조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지만 부동산투기 열풍을 진정시키는 데는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처분대상 토지는 모두 5천7백41만2천평으로 이 가운데 처분이 완료된 것은 3월말 현재 3천6백46만9천평으로 전체의 63.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토지소유자들이 모두 처분하겠다고 발표하기는 했으나 마땅한 원매자가 없거나 소송 등의 사유로 매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이 취해졌다는 점에서 초법적이라 할 수 있는 「5·8조치」는 망국적인 현상인 부동산투기 열풍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권유지 차원에서 내놓은 마지막 카드였다.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부동산 투기의 최대 수혜자로 일컬어지고 있던 재벌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 시장수급면에서도 5천7백여만평이라는 매물을 일시에 공급,가격하락의 물꼬를 텄다.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로라도 처분시키려 했던 정부당국과 죽어도 처분하지 못하겠다는 재벌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진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은 H그룹의 총수는 『자식처럼 관리해온 땅을 팔게 되었다』며 식음을 전폐,며칠간 입원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K그룹은 법정소송을,L그룹은 외교문제로 비화시키려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정부당국은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면 경제정책이고 뭐고 모두가 망가진다는 생각에서 갖은 수단을 모두 동원,초지 일관했다. 이때 생긴 앙금이 국민당의 출현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그럴듯하게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5·8조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롯데그룹의 잠실 제2월드부지 처분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롯데그룹이 백기를 들고만 지난해 3월 정부의 최고위 당국자는 『법적 근거를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하루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눈 뻔히 뜨고 보고 있는 땅인데 이를 가만두면 정부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어요』라고 다급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서울도심의 금싸라기 땅인 이곳은 면적이 2만6천6백여만평에 달해 이제까지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분할매각 허용여부를 놓고 관계당국간에 의견이 엇갈린 상태이지만 롯데로서는 이미 남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5차 공매에서도 안팔려 토지개발공사가 연 7% 만기 5년의 토지채권으로 매입할 경우 롯데로서는 구입비 세금 등을 감안하면 본전도 못건지는 꼴이 되게 되었다.
「5·8조치」는 부동산투기 억제가 제1의 목표였지만 그안에는 여러가지 노림수가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콧대가 세질대로 세어진 재벌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역력했고 바로 한달전 금융실명제 실시 백지화 발표로 이완된 「경제민심」을 수습하는 부수효과를 겨냥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점도 많다.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초법적인 조치가 남용되어서는 곤란하다. 해당 재벌들이 부당한 조치인줄 알면서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경유착이 얼마나 많느냐 하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다. 「5·8조치」는 미완의 정책으로 차기정권에 넘어가게 되었지만 기존의 각종 투기억제 정책을 평소에 성실히 시행하지 않고 「직무유기」 함으로써 결국 초법적인 조치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선례라고는 할 수 없다. 소기의 정책목표를 달성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호미로 막아도 될 일을 가래로 막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더 큰 정부 불신을 자초하는 우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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