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이에게도 널리 읽혔던 동화 「피리부는 사람」에는 한 소년의 피리소리를 따라 줄줄이 바다에 빠져들어가는 쥐들의 얘기가 나온다. 인간의 거짓말에 대한 징벌을 주제로 한 이 동화속의 쥐들의 특성은 피리소리 하나로 모여들고 그 무리를 따라 바다에까지 들어가 빠져 죽게되는 군집성행동이다.이런 쥐와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5·17직후 5공 구축작업이 시작됐을 무렵 한미군 고위장성이 『한국민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지도자를 따라갈 것』이라고 한말이 크게 말썽이 된 적이 있다. 각계의 항의에 미국측은 『사실과는 다르다』고 해명을 했지만 남의 나라 국민성을 들쥐에 비교한 것도 그렇지만 그해 8월이란 김영삼씨 정계은퇴 기자회견,김대중씨 내란음모사건 첫 군재,최규하대통령 하야성명,김두환장군 새 대통령에 추대가 하루 걸러 발표되던 시절로 선택이란 있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이 강요되던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 빗댄것도 전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 뒤에 나온 들쥐에 관한 설명이 더 볼만한 것이었다. 여기서 지칭한 들쥐란 여느 쥐가 아니라 북미지역과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북유럽에 서식하고 있는 레밍(Lemming=나그네쥐)이란 특별한 종류라는 것이었다. 이 레밍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이동의 습관이 있는데 한번 이동이 시작되면 선두를 따라 거대한 무리가 따라나서고 끝내는 선두가 바다에 빠져드는데도 줄줄이 따라 들어가 모두 죽는 것으로 대이동은 끝이 나는 습성을 지닌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미군장성으로 하여금 우리 국민의 행동양식으로 레밍적인 증세를 떠올리게 했을까. 말도 안되는 절차로 정권이 바뀌고 있는데도 묵묵히 「새 지도자」라고 따르는 것같은 당시 상황을 비아냥거린 것인가,아니면 진짜 우리들에겐 큰 무리만 보면 무조건 따라 나서는 레밍증상이 있어 보여서였을까. 이제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때의 노여움을 풀고 한번 우리쪽도 곰곰이 돌아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같지는 않다.
○정치판의 들쥐들
과소비가 한창 사회문제가 됐을 무렵 지적됐던 한가지는 부유층의 과소비보다 더 문제시해야 할 것이 그 다음 계층의 모방 과소비라는 것이었다. 실질수입이나 여러 상황은 과소비와는 분명 거리가 있는데도 소비의 정도로 신분경쟁이라도 하듯한 사회풍조를 감내하지 못하고 참여해 끝내 「바다에 빠지고 마는」 뇌동그룹이 가장 문제라는 것이었다.
좀 된다는 장사가 있으면 너도나도,장사할 사람,안할사람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끝내 밑창을 보고마는 것이나 부동산이 괜찮다면 온나라가 투기로 뜨끈뜨끈해지고 8학군이 좋다니까 그 엄청난 집중에 강남개발은 촉진되었으니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가 돼버린 일. 좀 괜찮다고 소문만나면 뭐든 덤비고 보는 극성이 우리사회의 에너지원이 된것도 사실이지만 성숙한 사회의 가장 큰 요체가 되어야할 다양성,다원화에 매우 서툴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자기기준,자기판단에 따라 다채롭게 행동하기보다 남이하면 나도해야 직성이 풀리고 「대세」라면 우선 끼이고 봐야 안도하는 것이 어느새 우리 생활방식처럼 돼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증세가 다양한 선택의 장이 돼야할 우리의 정치판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몇차례의 혁명,혁명적 변혁을 거치면서도 우리의 「대세」란 늘 권력주변에 형성되게 마련이었다. 이 세력에 편승만하면 어떤 전력도 온전할 수 있었고 그래서 권력의 도덕성이나 정당성에 관계없이 늘 그앞은 이줄 저줄을 대고 몰려드는 「레밍」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었다. 어떻게 보면 이가성의 대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새 진성대세로 행세하게돼 이 현상을 더욱 가속시켰다. 여기에 우리의 투표자들 마저 이런 향대세성의 투표성향으로 이를 정당화시켜주는 묘한 순환이 우리 정치의 전형처럼 돼버린 것이다.
○다원성 지향해야
한 교육학자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필요로하고 교육은 그 제반조건을 갖추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자유로운 심성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쳐야하고 의견의 차이를 관대히 다루고 존중하는 법을 지금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한 기고에서 밝히고 있다.
크고 많고 힘세고하면 우선 몰려들고 보는 이 사회의 풍조가 타고난 것인지,교육탓인지,아니면 우리의 과거사탓인지 알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숙사회로의 도약을 위해,나날이 다극·다차원화해가는 세계적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도 이런 일원성현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타당성과 정당성의 편에 선다는 용기와 자부심을 이젠 가질때도 됐다.
이달안에 있을 각당의 대통령후보 경선,12월의 대선이 모두 우리에겐 여간 중요한 행사가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당이 어떤 경선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민자당의 경선은 투표도 하기전에 구경꾼을 많이 잃은 형국이다. 어딘가에서 무슨 피리소리를 들었는지 눈치를 보던 일단의 세가 방향을 잡아버렸다는 보도들 때문이다.
13세기 독일 전설에서 비롯됐다는 동화 「피리부는 사람」은 마을을 쥐떼에서 구해줬는데도 약속한 사례금을 주지않자 하멜른 마을의 어린이들을 모두 데리고 떠난다는 응징으로 끝을 맺고 있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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