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배심 재기소조건 엄격… 충족 어려워/통과해도 다시 무죄땐 사태 더 악화될듯전세계를 경악시킨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이 수습되면서 사태의 뇌관으로 작용했던 「로드니 킹」 사건의 재심리 여부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로드니 킹 사건은 현재 미 연방검찰당국이 재기소 여부를 결정키 위한 자체조사를 착수한 상태.
연방사법당국은 로드니 킹 사건의 관련기록을 이미 캘리포니아주 검찰측에 요구했으며 대배심이 관련자료를 검토,무죄석방된 경찰관 4명의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할 경우 재기소하게 된다.
로드니 킹 구타경찰에 대한 재기소는 형사소송법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배되지만 미 사법제도는 연방민권법을 근거로 주법원에서 유죄평결을 받지 않은 사건에 대해 재기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로드니 킹 사건이 연방사법당국에 넘어감으로써 사건은 이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오히려 로드니 킹 사건의 사법처리에 쏠리는 국민의 관심은 더욱 높아져 있고 따라서 유무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사건이 사법적 판단의 차원을 넘어 정치쟁점으로 비화되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로드니 킹 사건의 재심결과에 따라서는 또 다른 흑인폭동 사건이 발생,부시 대통령에게 치명적 타격을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미 사법부 일각에서는 연방 대배심이 로드니 킹 구타경관을 기소하지 않는 경우 수많은 흑인들이 그동안의 「속임수」에 반발,또다른 유혈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한다. 또 이들 경찰관이 기소된 뒤에도 다시 무죄로 결말이 날 경우 더욱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로드니 킹 사건의 재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할 로스앤젤레스 연방 대배심이 경찰관의 민권법 위반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연방민권법은 경찰관이 체포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무자비하게 행동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그들이 의도적으로 피의자의 헌법상 기본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적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방 대배심도 경찰의 로드니 킹 구타장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만을 가지고 민권법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증거를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이 사건의 또다른 변수는 대배심원들이 관련 경찰관에게 유죄평결을 내리기를 주저할 것이라는 점이다.
대배심은 신부,의사,변호사,경찰관,군인,그리고 선거에 의해 선출된 공무원이 아닌 18세 이상 76세 미만 미국의 보통 시민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연방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을 검토하고 증인신문 관련자료를 조사한후 피의자에 대한 기소,불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배심은 미국의 배심원제도에 의해 인구비율로 구성되기 때문에 백인의 수가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의 수보다 월등히 많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로드니 킹 사건의 유죄를 주장하는 여론이 팽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흑·백 인종차별이 상존하고 있는 미 현실상 백인 배심원들이 같은 백인을,그것도 경찰관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과거의 대배심 평결을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지난 80년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하던 흑인 보험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구타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5명의 백인 경찰관중 무죄평결을 받은 한명의 경찰관에 대해 대배심은 민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무죄평결을 내렸다. 이 평결로 18명의 사망자를 내는 흑인폭동 사건이 발생했었다.
연방사법당국은 그만큼 대배심으로부터 민권법 위반 경찰관에 대한 유죄평결을 받아내기가 무척 어려운 현실이다.
부시 대통령은 사건의 조기진화를 위해 연방차원의 재조사를 지시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함정을 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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