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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생활 20년 애환 성금에 담아/동아전기 이건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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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생활 20년 애환 성금에 담아/동아전기 이건수대표

입력
1992.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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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교민돕기 1억 기탁/67년 무일푼 도미… 고생끝 성공/85년 귀국,중소업체 “탄탄” 경영/미국내 가족보다 동포걱정 앞서20여년의 미국생활로 재미동포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아는 한 중소기업사장이 흑인폭동으로 실의에 빠져있는 LA 동포들에게 보내 달라며 1억여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전전자교환기(TDX)의 주전원공급장치 생산업체인 (주)동아전기 이건수대표(50)는 4일 한국일보사를 방문,자신이 내놓은 1억원에 회사임직원들이 모은 정성을 합해 1억1백36만7천원을 기탁했다.

매출액 2백억원대의 중소업체사장 이씨가 쾌척한 성금은 험난한 이민생활속에 당한 동포의 고통을 감싸주기위한 뜨거운 사랑을 담은 것이다.

현재 부인(49)과 아들(14) 딸(13)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씨는 이번 소식을 접하고 가족걱정 보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려는 동포들을 부추겨 세우는게 급선무라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

『LA교포들이 당한 환난은 몇몇 개인의 슬픔과 좌절이 아니라 모든 한국민의 슬픔』이라는 이씨는 폭동사태이후 미국의 가족과 친지에게 『두려워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수없이 전화를 했다.

이씨의 지난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인 미주이민사 그 자체였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66년 3월부터 1년6개월가량 몸담았던 무역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단돈 1백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식당·인쇄소 등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가까스로 사업자금을 마련한뒤 한때 한국산 수제품 가발장사로 큰 돈을 벌기도 했으나 73년말 오일쇼크에 따른 불황으로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3년가량 이곳저곳을 떠돌며 고용살이를 하기도 했던 이씨는 76년 LA외곽의 부도난 슈퍼마켓을 헐값에 인수하면서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뛰어난 경영수완으로 1년 8개월만에 90만달러를 벌어들인 이씨는 이를 바탕삼아 중동·유럽 등지를 돌아다니며 원자재무역업을 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77년 2월 35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85년말 고국에 잠시 들른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주전원장치 국산화사업을 시도하다 부도위기에 몰린 동아전기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됐다.

주위에서는 그동안 모은 돈을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라고 권유했으나 미국에 있는 재산중 일부를 처분,60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

대학을 나오고도 이렇다할 기슬이없어 막노동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했던 젊은 시절부터 『돈을 벌게되면 단 한사람의 기술자라도 키우는 사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던대로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힘든사업을 시작했다.

인수당시 연간 매출액이 5억∼6억원에 불과했던 동아전기는 이씨의 탁월한 경영에 힘입어 해마다 영업실적이 급신장,90년에는 매출액이 2백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과학의 날에는 국산 전자전자식교환기 개발로 1억5천만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제가 무슨 돈으로 많은 성금을 내느냐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앞선다』는 이씨는 『이번 폭동에서 인접한 중국인타운과 일본인타운이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은것은 그들의 단결력 때문이었다』』며 『미력이나마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한핏줄 동포를 도움으로써 미국은 물론 전세계인들에게 우리 민족의 단결력과 정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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