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폐허속 초인적 재기의지 “과시”/활력찾는 LA 한인타운 현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폐허속 초인적 재기의지 “과시”/활력찾는 LA 한인타운 현장

입력
1992.05.04 00:00
0 0

◎교포 변호사등 보상청구 무료 상담/즉석모금 수십만불 먼길 달려 전달/일부 흑인 “집세 3개월 안받겠다” 용기 북돋기도잉글우드,캄튼지역 등 한인상가들을 지나면서 특별취재반의 모든 기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감성이 여린 기자는 눈물을 훔쳤다.

가는 곳마다 타고 깨지고 약탈당한 한인 상점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입을것 못입고 먹을것 못먹으면서 일군 가업들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 현장. 흑백갈등의 와중에서 희생양처럼 당해야만 했던 이 냉혹한 현실앞에서 기자들은 취재이전에 동포애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파괴된 상점수리를 도와주고,전소된 슈퍼 청소를 함께 하느라 어느새 숯검둥이가 될 수 밖에 없었지만,차라리 계속 피해교민들과 함께 복구작업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피해를 당하지 않은게 미안할 정도였다.

웨스턴가 초입부터 눈에 띄는 전소된 김스양국,박스보석상,썰물이 지나간 뒤끝같은 미드타운 쇼핑센터의 한인 업소들,깡그리 약탈당한 버몬8가의 코스모스 금성냉동·송학식당·빅베어 흑염소·자주카펫 등 한인 상가지역은 차라리 눈을 감고 지나고 싶었다.

알렉산드리아가에만도 한인운영 밥상집,세븐일레븐 등이 전소됐다. 피해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였다. 가히 한인상가들은 전쟁의 중심부처럼 보였다.

LA 총영사관은 일단 접수된 피해만도 피해업소 1천1백여개,피해액 2억5천9백만달러라고 했다. 그러나 피해신고가 제대로 접수된다면 최소한 3억∼5억달러는 되지 않을까. 말로 형언키 어려운 현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하고,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것인가. 눈에 띄는 곳,발이 닿는 곳 모두가 참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교민들은 억울하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복구의 삽을 들고 있었다.

앙상한 골조만 남은 가게앞을 빗자루로 쓸고,무너진 벽을 세우는 교민들의 모습은 비장함과 엄숙함마저 느끼게 했다.

양식있는 흑인들은 교민들의 「경건한」 복구작업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 했다. 전소된 80가의 슈퍼마켓 주인 김두준씨는 흑인 건물주로부터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참담함마저 느낀다』는 사과와 함께 3개월간 집세를 안받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 외에도 많은 한인업소들에 이웃 흑인들의 인사가 잇따랐다.

사우스 센트럴의 74가에 위치한 구자협씨의 슈퍼마켓은 폭동기간 내내 친하게 지낸 흑인 이웃들이 약탈과 방화를 막아주었다. 이들 흑인 이웃들은 그동안 텐트를 가지고 나와 슈퍼마켓을 지켜주었고,사태가 진정된 지금 『이웃을 돕자』며 주위 한인업소들의 피해복구에 동참하고 있다. 구씨는 『고마운 흑인들이다』며 『우리 가게 이야기가 널리 퍼져 이유없이 증폭된 한흑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포들간의 도움은 상상외로 뜨거웠다. 한국일보 LA 미주본사와 LA 한인 라디오방송에는 2일 하루만에 미 전역의 교포들로부터 수십만달러의 성금이 모여들었다.

동양선린교회에는 생계를 위협받는 동포를 돕자는 방송이 나가자 우유 라면 식빵을 들고 찾아온 교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양선린교회의 다른 한인교회에도 구호품과 성금이 쉼없이 답지했다.

한인 은행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피해본 한인들에게 융자상환 연기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외환은행 등 LA에 상주하는 국내 은행 지점들도 지원책을 강구중이다.

또한 김지영변호사 등 한인 변호사들이 나서서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무료 변론을 해주고 있다. 피해를 덜입은 한인 음식점,목재상,상점들이 전재산을 날린 동포들에게 무료로 음식과 복구자재를 지원해 주었다. 이런 미담은 수없이 많다. 이들 개별적인 도움을 하나로 묶는 노력도 전개되고 있다.

『한인사회에는 사공이 너무 많다』는 비난은 이번 사태로 깨끗이 씻어질 것 같다. 20여개의 단체들이 LA 총영사관과 합동으로 지난 1일 「범교포 4·29 비상대책본부」를 공식 발족,한인사회 재건을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비상대책본부는 피해대책반(변호사협회,공인회계사,보험협회) 경비반(해병동우회,한인타운 방범특위,한인청년단) 봉사반(YMCA,YWCA,간호협회) 대외반(한미연합회,한인청소년회관,한인전자협회) 시위집회반(한인교회 협의회) 자문위(한국노인회,타운교민회) 등 6개반으로 구성됐다.

대책본부는 먼저 피해를 자체 조사한후 이에 따른 보상책을 미 정부에 집단 요청하고 한인변호사·회계사들로 하여금 피해교민이 보험금을 제대로 탈 수 있도록 법률조력도 해주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3천3백여개의 한인 주류업소로 구성된 남가주 한미 식품상협회는 정부에 집단으로 청원,무상지원·저리융자를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다.

LA 총영사관도 한인단체들과 공조체제를 유지하며 한국 외무부와 협조하에 LA시·주정부로부터 보상과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다.

비록 시련이 크고 절망이 깊다 해도 이 따뜻한 동포애와 불굴의 의지는 폐허의 한인사회를 웅장하게 더 참되게 재건시킬 것이다.

○물에 젖은 물품정리

○…흑인태풍이 핥고 지나간 한인타운과 폭동진원지인 사우스 센트럴가는 수많은 한인들이 주말을 잊고 타다남은 물품을 정리하고 깨진 유리창을 치우는 등 피해복구에 나서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있다.

한인상점이 밀집돼 있는 사우스 센트럴가는 피해가 워낙 커 한인들은 상권자체가 회복될 수 있을지 몹시 염려하면서도 놀리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 모습.

사우스 센트럴가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다 흑인들의 약탈과 방화로 무일푼이 되다시피한 한인 중년부부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재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한인들은 가게가 완전 전소돼 피땀흘려 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걸었던 한인타운은 주방위군이 순찰을 돌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폐쇄해온 출입구를 열고 쓸만한 물품을 추스리는데 분주했다.

버몬과 3가 북동쪽에 위치한 본스 마켓은 그동안 폭도들의 침입을 막기위해 합판으로 막아놓았던 출입구를 제거하고 남은 물품을 재정리,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문을 연다는 방침아래 내부정리에 열중.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쇼핑센터에 위치한 뮤직플러스 등 9개 업소도 대부분의 물품은 약탈당했지만 다행히 방화피해를 입지 않아 물품 재정리에 급피치.

○버클리서도 오기도

○…한인 업소가 흑인 폭도들에 의해 약탈·방화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LA소재 대학 유학생들이 피해복구에 적극 참가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입증했다.

LA인근 UCLA대에서 2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강모군은 교포가 당한 피해를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주말을 틈타 동료 10여명과 함께 복구지원에 나섰다면서 가능하면 주중에도 시간이 날때마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에 돌아가면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교포돕기 성금모금 등 피해교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피해복구를 돕기 위해 지원나온 유학생 중에는 LA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버클리대 출신도 섞여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그는 버클리대 유학생들도 곧 지원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숨진 이군 교포장 결정

○…LA의 범교포 4·29 비상대책본부는 폭도들로부터 한인타운을 지키기 위해 자경대에 참여했다가 참변을 당한 이재승군의 장례를 범교포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2일 발표.

대책본부는 LA교포 저명인사들로 이재성열사 장례위원회를 구성,장례를 주관하고 장례식은 오는 6일 상오 11시 한인타운안의 아드모어공원에서 거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