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LA 한인타운」 흑인폭동을 보고이번 LA 흑인 폭동사태는 온 국민들을 TV앞에 묶어놓았다. 작년초의 걸프전쟁,8월의 구 소련 쿠데타에 이어 세번째다. 언뜻 보아 무관한 것 같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건들이라 생각한다.
현실사회주의의 파국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읽어내고 어느때보다도 호기있게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고 나섰던 미국이 바로 집안에서 뒤통수에 칠수를 맞은 셈이다. 도처에 보이는 것이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문제아들 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흑인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에서 발단된 이번 사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양식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양식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스는 1일자 사설에서 이번 평결이 「법과 법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폭행했다」고 개진했다. 그러면서 「난동자들이 약탈과 파괴의 기회를 기다려」 왔으며 평결과 폭동사태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 배심원의 발언에 깔린 인종적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1일자 사설에서 폭동사태가 암울한 미국 역사의 지속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사태직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표명한 견해는 미국 당사자에게는 아플지 모르지만 정곡을 찌른 비판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양식의 합의가 사실상 도출되어 있는 이상 문제해결을 위한 긴 노력은 미국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일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기다려 볼 도리밖에 없다.
문제는 왜 우리 교포들이 1차적 공격목표가 되고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다시 뺏은 옷가지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할머니,몇십년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고 기막혀 하는 김청자씨,돌을 맞고 분통을 터뜨리는 뉴욕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안타깝고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포들이 해외에서 집단적인 수난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는 1923년 대지진때 일본 동경에서 자행된 동포학살을 기억하고 있다. 31년 만주에서 발생한 만보산 사건을 기억한다. 또 최근에 와서야 밝혀졌지만 37년 가을 16만의 교포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겪은 혹독한 수난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수난은 모두 8·15 이전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이번 수난은 우리가 경제적인 발전을 어느정도 이룩하고 국제적 성가가 상승하는 시기에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나라,저 바이마르공국의 재상이었던 피히테까지도 이민가고 싶어했던 나라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각별히 충격적이다.
주방위군이 주로 백인 거주지역에 우선 배치되었다든가,시청각 보도매체가 흑인 폭동을 한흑 충돌로 몰고가는 보도자세를 보여 주었다는 점 등은 교포의 앞날이 계속 험난하리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비애가 현저하게 감소되리라는 징후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당국자와 피해당사자들이 모두 합심하여 난경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국에 편안히 앉아 있는 우리로서는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절망하지 않고 처음 미주로 향해갔을 때의 패기로 모든 것 복원하게 되기를 빌고싶은 심정이다. 이점 온 국민이 정서적 일치를 보여줄 것이다.
약자끼리 벌이는 편싸움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딱한 정경의 하나다. 흑인가에서 돈벌고 백인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을 보며 배우지 못한 흑인들은 착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우리 속담속의 때리는 시어미 아닌 「말리는 시누이」로 비쳤을는지도 모른다. 난동자들의 폭행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감정적 대처는 TV가 유도했다는 「한흑충돌」을 다시 실현시킬지도 모른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교포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거시적으로 볼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슬기로운 일은 대체로 어렵게 마련이다. 「각국이 자국의 고질적 문제를 돌아보고 그 처방책을 찾도록 해야한다」는 더 타임스의 사설 또한 우리가 직시해야할 사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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