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업체의 대명사격인 원진레이온의 전·현직 근로자중 32명이 새로이 직업병 환자로 밝혀짐으로써 공해산업의 무서운 해독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지난해 직업병에 시달리던 전직 근로자의 사망과 자살,작업중인 현장 근로자의 집단 마비증세 등 사고가 잇따라 1백35일에 이르는 유족들의 사체 농성시위와 근로자들의 농성사태를 겪은 원진레이온에서는 88년 직업병의 첫 판정이 내려진 이래 92명의 전·현직 근로자가 의료기관으로부터 2황화탄소(CS2) 중독에 의한 직업병환자 판정을 받았으며 그중 8명이 사망하였다. 이번에 2황화탄소 중독 유소견자로 밝혀진 32명은 지난해의 파업사태 이후 노사합의에 따라 현직 1천1백64명,전직 3백90명 등 모두 1천5백54명의 근로자에 대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정밀 역학검사를 실시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이들 외에도 2황화탄소 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인 근로자가 88명이나 된다고 하니 원진레이온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던가를 한마디로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내용이다. 회사측은 이제까지 생산공정상 2황화탄소가 배출되는 유해부서인 방사과에서 장기간 근무한 근로자만이 직업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것으로 주장하여 왔지만 32명의 중독 유소견자중 58%에 해당하는 19명이 정비과·후처리과·원동과 등 비유해부서 근무자들이며 근무경력이 4년에 불과한 근로자도 2황화탄소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공장내에 유해부서와 비유해부서가 따로 없으며 주변의 주거지역까지도 2황화탄소 중독의 위험이 높거나 건강을 결정적으로 해치는 유해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파업사태 이후 회사측은 시설보수로 작업환경 개선을 약속했고 관계당국도 작업환경의 정상을 조사 발표하였으나 근로자,현지 주민 그리고 환경단체들은 당국의 발표를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밀 역학조사 결과가 이렇게 충격적인 만큼 열악했던 원진레이온의 작업환경이 부분적인 시설보수만으로 개선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다.
원진의 직업병 문제는 노후된 시설의 철거를 통한 생산공정의 완전대체와 인구과밀한 주거지역으로부터의 공장이전 외에 달리 해결의 묘안이 없다. 그러나 원진이 국내 유일의 비스코스레이언 생산시설로 국내 수요의 40%를 공급한다는 이유로 해서 공해 발생때마다 제기되는 공정대체와 시설이전은 탁상공론으로 그쳐왔다. 얼마전에 5년 가동을 조건으로 한 공매입찰 방침이 발표되었지만 적자투성이의 공해산업을 어느 기업이 인수할 것인가. 국내 수요를 전량 수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근로자를 병들게 하고 주민건강을 해치는 원진레이온의 폐업에 주저할 필요는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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