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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시비/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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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시비/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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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는 사형폐지를 공약중의 하나로 내걸었다. 프랑스혁명 이래의 전통과 프랑스사람들의 아주 보수적인 형벌감정에 비추어,그것은 표 모으기에 도움되는 공약은 결코 아니었다.이런 사정은 69년에 드골을 이은 퐁피두 대통령이,겨우 재임중 한건도 사형집행이 없을 것이라 공약하는데 그쳤고,그나마 그 공약을 지킬수가 없었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퐁피두 대통령은 취임초 사형수 3명을 대통령직권으로 감형하는 등 공약을 지키려했으나,72년에는 여론에 밀려 사형수 두 사람의 처형을 「묵인」한 것이다.

그러나 미테랑 대통령은 취임 뒤 첫 국회에 사형폐지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프랑스가 유럽의 마지막 사형폐지국이 된 것이다.

우연찮게도,이 일을 주관했던 로베르 바당데르 법무장관(당시)은,72년 퐁피두가 사형집행을 묵인했던 사건의 변호사였다.

그것은 어떤 지방도시의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인질로 잡힌 교도관과 간호원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바당데르 변호사는 범인으로 지목된 두 사람중 한 사람의 변호를 맡았다. 그의 의뢰인은 살해현장에 있었으나,직접 하수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란히 단두대(길로틴)에 올랐다.

이 사건은 사형시비를 재연시키기도 했지만,더 기막힌 에피소드 하나를 남겼다. 이런 얘기다.

사건의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법원앞에 몰려 든 사람들은 『사형!』을 외쳐댔다. 그 4년 뒤 바당데르 변호사는 같은 도시에서 일어난 유괴살인사건 범인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의뢰인에게 4년전 사건을 말하며 사형이 두렵지 않더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법원 앞에서 『사형!』을 외쳤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은,어떤 중죄인도 사형을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충동범죄인 경우는 죄와 벌을 생각할 틈이 없다. 계획범죄는 사형을 생각할 틈이 없다. 계획범죄는 사형을 겁내지 않거나,붙잡히지 않는다고 자신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사형은 남의 일이 되고,사형이 범죄를 제압하는 효과는 보잘것 없어진다. 이른바 사형의 위하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사형제도가 있어야 할 합목적적인 근거는 극히 미약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치가 이렇다는 더 뚜렷한 실증이 군형법 말고도 40여개 사형규정을 가진 우리나라 형사법이다. 한 예를 들자면,뺑소니 운전사의 사형을 규정한 특가법이 있다. 이 규정에도 불구하고 뺑소니는 늘기만 한다. 실제로 그 사형규정을 써 먹은 적도 없다. 그나마 이 조문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났다. 너무 가혹해서 형평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그 사형규정을 마구 휘둘렀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가정파괴범 등의 본떼보이기 무더기사형을 집행하곤 하지만,그로 해서 흉악범이 줄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뺑소니 운전자의 사형집행도 예방효과는 뻔했을 것이다. 그런 터에 그 뺑소니 사형규정이 위헌이라고 한다면,사형을 당한 운전자만 억울하다는 결과가 된다. 아마 그 원혼을 달랠 길이 막연했기 십상이다.

여기 사형제도를 수긍못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사형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는,이런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겠으나,이제 사형폐지는 세계의 대세나 다름이 없다. 작년말 현재로 사형을 전면 폐지한 나라가 44개국,조건부 폐지 또는 사실상 폐지한 나라가 37개국에 이른다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작년 7월에는 유엔의 사형폐지 조약이 발효가 됐다. 유엔을 존중한다면,우리도 조만간 가입여부를 검토해야 할 조약이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서도,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형법 개정시안이 사형규정을 축소하고,그 제44조 ②에 「사형선고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그것은 근래의 여론조사에서 사형폐지 의견이 9%,제한적용(축소)의견이 56.7%였다는 사실(동아일보 4.28)과도 부합한다.

하지만 개정시안이 「사형선고의 신중」만을 선언하고 있음은 아무래도 미흡해 보인다. 어차피 사형의 축소→폐지를 하나의 추세로 받아들인다면,「사형선고의 신중」만이 아니라,「사형집행의 신중」도 기약할 수가 있어야 옳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사형제도를 페지하는 경우도,사형의 전면폐지,관습상 폐지(과거 40년간 사형집행 없음),운용상폐지(과거 10년간 사형집행 없음)등을 구분하는 국제적인 통념을 따라,우리도 사형폐지를 지향하되,그것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얼마든지 생각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사형제도 자체는 남아있더라도 그 집행을 유예 또는 보류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형을 선고하되 집행을 일정기간 유예하는 중국의 제도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과천선 감형의 기회가 늘어나고 사형집행은 아주 선별적인 것이 된다. 또 일정기간 사형집행을 전면 보류하고,그 사이 범죄발생 동향을 살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음은 가석방을 인정 않는 무기징역,또는 재판절차를 거치는 등 감형이 어려운 무기징역제를 신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써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의 낙차가 줄어든다면,무기징역의 선고를 유도할 수 있고,동시에 흉악범의 격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유기징역 상한을 15∼25년에서 20∼30년으로 높임으로써 오히려 선고형량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는 형법개정시안의 취지와 상통한다.

세번째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배려다. 사형은 피해자 가족에 대한 감정적인 보상이란 측면이 있는만큼,이를 대신할 방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교통사고의 민사보상과 버금하는 사형보상제도는마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사형제도와 그 운영실태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남의 일」이 아닌 사형제도 논의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여론의 동향을 보아 우리나라 사형제도의 앞날을 정할 수 밖에 없겠기 때문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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