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민주국가의 최고통치권자들은 국민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시한다. 국가가 난국에 처했을때는 말할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국민과 부지런히 대화를 한다. 국민과의 대화를 게을리 하거나 또 단절하면 온갖 루머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국가운영도 힘들어지게 마련이다.물론 대화는 일부 특정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한 간접대화가 아니라 회견 등을 통한 직접대화,일방적 포고나 선언 또는 발표 등의 수직적 대화가 아니라 설득하는 수평적인 대화여야 효과를 거둘수 있다.
1932년 F 루스벨트가 경제공황으로 파탄된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주력한 것은 국민과의 대화였다. 기자회견과 대소연설을 거의 매일 가졌고 특히 정예리디오 노변담화를 통해 나라의 형편을 솔직하게 알리고 정부가 추진하려는 뉴딜정책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동의를 구했다.
6공들어 노태우대통령의 소위 「보통사람의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을때 국민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하는 일과 특히 중요문제에 대해 최고통치권자의 분명한 태도와 의중을 수시로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그것은 박정희 전두환씨 등 전임대통령이 일방통행식의 연두 또는 하계회견으로 직접 대화를 끝내고 간접대화로 거의 일관한데에 불만이 누적됐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6공이래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대화방식이 별로 달라진게 없기 때문이다. 연두 및 여름회견 6·29선언 간담회 각 신문사 창간기념회견 등이 전부고 조기에 잠시 시행됐던 라디오 국정연설도 이내 중단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직접 대화를 드물게하니 국무총리나 장관이 입을 열겠는가. 총리는 아예 기자회견을 안하는 것이 잘하는 일처럼 돼버렸고 당초 매달 정례회견을 갖고 소관업무를 전하기로 한 장관들의 회견 역시 실종된지 오래며 엉뚱하게 간담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요사안도 감담회로 얼버무리는 이런 자세는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는 무소신보신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이쯤되니 시중에는 때도없이 유언비어와 루머만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노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인내침묵형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참을 때까지 참고 즉각 대응 대신 기다린 후에 단안을 내리는 식이다. 각계의 욕구가 폭포처럼 분출하는 격동기에는 하나의 처방일 수도 있고 또 인내해서 자연치유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와 침묵이 결코 만병통치의 약은 아니다.
요즘 나라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는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여당사상 처음으로 자유경선을 통해 뽑는 만큼 그 의의는 매우 막중한 것이다. 이게 어디 민자당만의 집안행사인가. 당연히 국민이 지켜보고 참여하는 국민적 행사 아니가.
따라서 총선직후 자유경선을 하기로 했다면 노 대통령은 회견을 통해 즉각 경선의 참뜻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일련의 공정경선원칙을 제시하는 한편 본인은 「엄정중립」을 선언했어야 했다. 결국 예의 「침묵과 인내」 방침이 여기에도 적용된 것인가. 분명한 입장표명을 않으니 온갖 루머,즉 「대통령이 누구를 밀기로 했다」 「고도의 정치바둑을 두고있다」 「외압을 가했다」느니 등등의 뜬소문과 추측들만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며칠전 세최고위원과의 회동서 뒤늦게 「엄정중립」이 강조되었지만 실기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9개월정도 남았다. 본인은 임기만료때 까지 최고통지권자로서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올바른 국정운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직접 대화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확고한 입장표명과 함께 선뜻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자회견은 적어도 매달 한차례씩 갖기를 권고하고 싶다. 이제 「인내와 침묵」은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국민은 인내와 침묵보다 대통령의 분명한,또 솔직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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