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작극으로 밝혀진 최에스더양 실종사건은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치밀한 각본에 철저히 우롱당했다는 배신감에 「그래도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지도 못하게 됐다.에스더 사건이 처음 보도된 지난 23일 한국일보 편집국에는 시민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어린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어른으로서 자책감을 느낀다는 내용들이었다. 아버지 최석봉씨(59)에게 보내달라며 성금을 보내온 시민도 많았다. 자식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통화내용이 담긴 육성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아내와 딸이 함께 가출한 사실을 숨긴채 최씨는 『에스더가 실종된지 8개월만에 실성한 아내마저 가출했다』고 호소했다.
딸을 찾겠다는 눈먼 일념이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파장은 너무 엄청났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 1차적 이유는 경찰의 게으른 수사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일 최씨로부터 실종신고를 받은 경찰은 서로 자기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떠넘기기에 급급,가장 기본적인 전화발신지 추적은 물론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보름남짓 시늉만 내는 경찰수사를 지켜보던 최씨는 마지막 방법으로 언론을 이용했고 일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일부 방송사는 최씨와 에스더양 모녀를 데려다 취재를 독점하는 작태를 번갈아 보여줘 다른 언론사의 취재와 경찰수사를 방해,진상규명을 더디게 했고 숨어사는 모녀의 신상까지 낱낱이 공개,사생활·인권침해까지 했다.
피해자는 선의를 짓밟힌 국민 모두이지만 그중에서도 수많은 실종자가족들이 당하게 될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에게 쏟아질 의혹이나 불신의 시선은 가뜩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더욱 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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