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상오 10시 서울 종로구 도염동 종교교회에서는 일제에 의해 정신대에 끌려가 전선위안부 노릇을 해야했던 두 할머니가 치욕스런 과거를 눈물속에 증언하고 있었다.이날 행사는 지난 2월28일부터 1주일간 자신들이 능욕을 당했던 일본 오키나와 등 현지를 찾아보고 동경,후쿠오카 등지를 돌며 예배와 강연을 통해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의 양심에 호소했던 두 할머니가 한국에서의 첫 공식증언을 하는 자리였다.
『천인공노할 인권유린죄를 범하고도 뉘우치지 않는 뻔뻔스런 일본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리소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인권위간사 안계희씨의 간절한 기도에 이어 연분홍 저고리에 흰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심미자 할머니(69)가 등단,『하느님과 나만이 알고있던 사실을 역사에 기록하고자 창피를 무릎쓰고 털어놓겠다』며 또렷한 목소리로 증언을 시작했다.
『당시 소학교 5학년의 16세소녀였던 저는 자수시간에 일본지도에 벚꽃대신 나팔꽃을 수놓았다고 주재소에 끌려가 일본순사에게 성폭행당하고 후쿠오카로 강제로 보내졌습니다.… 하루 20여명의 일본인 짐승을 상대하며 보낸 6년간의 위안부 생활동안 얻은 것이라고는 매독뿐이었고 그 이후 제 인생은 시궁창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신 눈물을 닦으며 맨정신으로 듣기에는 너무 처참한 상흔을 토해낸 심 할머니는 『피맺힌 사연이 일본교과서에 기록되기전에는 결코 눈을감지 않겠다』고 끝맺었다.
이어 연단에 오른 황금주할머니(71)는 『각반을 찢어 생리대로 사용해야만 했던 참혹한 세월을 다시 떠올리자니 진절머리가 난다』며 『일본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아내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할머니는 2시간여에 걸친 증언을 마친후 곧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회원 50여명과 함께 세종로를 건너 일본대사관으로 몰려갔다.
「정신대만행 진상규명」이라고 쓰인 베옷을 걸치고 『진상규명』을 목이 터져라 외쳤건만 앞을 가로막아선 전경 어깨너머의 붉은색 일본대사관 철문은 굳게 닫힌채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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