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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양 칼날/한상진 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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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양 칼날/한상진 칼럼(밖에서 본 한국)

입력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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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발전의 한 딜레마는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증가하는 균열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미,동구,러시아는 물론 미국,일본,서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 이에 관련된 두가지 추세가 특히 관심을 끈다.하나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정에 관련된다. 정당과 국회 등 대의제도가 그 「대의」의 기능을 과연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대답이 의문스럽다. 정치는 직업정치인의 게임에 불과하다는 생각,국민은 투표라는 형식절차에 참여할 뿐 정치의 실제는 정보,조직,돈을 독점한 소수에 의해 미리 결정된다는 인식이 갈수록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위임 민주주의」가 세계도처에 성행하고 있음을 논파한 오도넬 교수의 최근 논의는 이 점에서 경청할만하다.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시민사회는 국가와 구별된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국가로부터 독립된 비국가적 공공영역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공론활동은 단적인 보기다. 법이 보장하는 일련의 권리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다양한 형태의 자율적인 시민운동,사회운동도 좋은 보기다. 사회전반의 의식수준이 향상되면서 시민사회가 특유의 정치적 성격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제도정치는 과거의 타성에 젖어있는 반면 시민사회에는 새로운 기대,요구,감수성,정체성이 성장하고 있어 둘 사이의 단층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미에 당기지 않는 식단을 짜놓고 식사를 강요하는데서 오는 유권자의 싫증과 불만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은 신생 민주주의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

여러 자료를 비교해 볼때 시민사회의 잠재력은 우리에게 매우 큰 것처럼 보인다. 인구의 4분의 3은 현재 도시에 살고 있고 취업자의 82%는 2·3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60년대 중엽이래 전체 고용에서 생산직의 비율이 1배 늘었다면 사무직은 2배,전문기술직은 3배이상 늘었다. 생산직의 주류는 기술노동으로 변모되었다. 교육수준의 증가는 가히 인상적이며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도시가구의 45% 정도는 주관적 객관적 중산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20∼30대의 젊은 세대는 인구 구성에서 비율도 커지지만 가치와 행동방식에서 현저히 변화지향적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시대적 분열양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양 칼날을 발견한다. 극좌와 극우의 자기 소모적 갈등이 대표적 보기일 것이다. 이들의 대립이 한때 첨예화 되었을때 양쪽을 다같이 질타하며 순리에 의한 민주화를 갈망한 사람이 다수였다. 이 결과 우리는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일단 양극의 세력을 제어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함정을 피해가는 것도 중요하다. 혹자는 우리가 이미 민주화를 완성한 것처럼 착각할지 모르나 제도정치의 민주개혁은 정작 이제부터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료제,군대 등 억압적 국가기구의 유산을 강조하는 비관주의자도 있지만 시민사회의 성장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객관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민사회의 시각에 힘입어 양극단의 편견을 벗어나 비판적이지만 긍정적인 눈으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칼날은 오늘날 제도정치에 깊숙이 각인된 과거의 타성과 관행을 향하고 있다. 상식과 순리대신 힘을 숭상하고 공개정치 대신 밀실정치를 지향하며 합리적 토론 대신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하는 정치문화의 체질이 도마위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국가권력과 현대재벌의 갈등도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정부는 외형상 법치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법집행의 보편성을 망각한 채 법을 정치적 재량의 도구로 사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대해 국민당은 「현대가 망하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정부에 맞서 동일한 파괴의 논리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두개의 거대한 권력이 서로 비토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확인되는 시민사회와 제도정치의 괴리는 심대한 후유증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시민사회안에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잠재력을 어떤 제도적 틀과 역사적 프로젝트로 담아내 민주화와 사회개혁의 탄탄대로를 뚫을 것인가의 과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양 칼날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가권력과 재벌기업에 예속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고유한 양식과 도덕성,전문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자율적인 시민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공간이 넓게 열릴때 잠재력은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대성을 만들어가는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집단과 지식인,특히 깨어있는 중간층이 제휴 협조하면서 「경제정의 실천 시민연합」과 같은 개혁운동을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시민사회의 능력이 밑으로부터 축적될때 제도정치의 개혁도 장차 그 힘에 의해 보다 의미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서울대 교수·뉴욕 콜럼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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