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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딸 3년6개월만에 전화/“아빠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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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딸 3년6개월만에 전화/“아빠 보고싶어”

입력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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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문잠가놔”… 곧 끊겨/최에스더양 7세때 집앞서 실종/아내도 가출,생업포기 전국 헤매어느날 갑자기 증발돼 종적을 알 수 없었던 딸이 3년6개월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제 정신이 아닌채 전국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빠 보고싶어. 아저씨가 자꾸 때려. 나가지도 못하게 가둬놔』

88년 10월16일 유치원에 다녀온 뒤 서울 관악구 남현동 산95의5 집앞에서 놀다가 실종된 최에스더양(당시 7세)은 지난 4일 아버지 최석봉씨(59·경기 과천시 과천동 412)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화였는데도 최씨가 『보고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동안 통화가 끊겼다.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경황도 없었다.

딸은 지난해 방영된 모TV의 실종자 찾기 프로그램에서 아버지를 보았는지 『아빠 아프다면서』하고 묻기까지 했다.

젖소사육을 제쳐둔채 딸을 찾아나선 최씨는 89년 9월부터 뻥튀기장사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딸이 없어진 뒤 실성한 아내(37) 마저 가출하자 최씨는 1톤짜리 중고 픽업트럭을 구입,천막을 씌우고 도배하듯 딸과 아내의 사진을 붙이고 울면서 헤매고 다녔다.

82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두다리가 성치 못한 최씨는 비가 내려 장사를 못하는 날이면 국민학교를 샅샅이 훑었다. 유괴범으로 오인당해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한 일도 있었다.

국민학교를 훑고나면 눈에 띄는대로 보육원이나 아동상담소를 찾곤 했다.

지난 4일 이후에는 경기 하남시 신장동과 송탄시 신장동을 이잡듯 뒤지고 있다. 기적처럼 전화를 한 딸이 『아저씨가 「신장동」이야기를 가끔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딸에게 미칠 화가 두려워 경찰에 신고도 하지않았던 최씨는 지난 6일 마음을 바꿔 서울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살아있는 것이 확인됐으니 에스더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그동안 키워온 정이 있어서라도 끔찍한 짓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에스더의 전화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청취한 서울 경찰청이 최씨의 연고지인 과천경찰서에 접수내용을 이첩,수사가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가 돼야만 지친 몸을 이끌고 단칸 사글세방에 돌아오는 최씨는 맨 먼저 자동응답전화기를 튼다. 3년6개월동안 매일처럼 해온 일이지만 에스더의 전화가 있고부터는 스위치를 누를때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가눌수가 없다. 그러나 더이상 연락이 없다.

최씨는 그동안 여러차례 이사를 했지만 전화번호는 딸이 실종됐을때의 그 번호를 그대로 갖고 있다.

에스더는 48세에 뒤늦게 결혼한 최씨의 유일한 자식이다. 실종 1년전인 87년 한국교육개발원 주최 전국아동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그림도 잘 그리고 총명했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며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깰때면 최씨는 진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녹음기를 틀고 또 튼다.

『아저씨가 밖에서 문을 잠가놔. 낮에도 들어오고 밤에도 들어와. 아빠 보고싶어…』

두달째 밀린 방세때문에 주인 아주머니 볼 면목조차 없는 최씨는 행여 폐를 끼칠까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이불 깃으로 틀어막곤 한다.<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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